강연장으로 가는 버스 차창 밖이 벚꽃으로 하얗습니다. 겨우내 가지만 앙상하여 이름도 알 수 없었던 나무에 엄지손톱만 한 은행잎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다소 세차긴 해도 분명 봄바람입니다.

오늘은 동국대학교 병원 대강당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봉사자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습이 행사전문가같이 보입니다. 일산 지역 행복학교에서 50여 분의 봉사자가 함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스님의 책을 사서 강연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봄을, 희망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동국대학교 병원 강당을 가득 메운 360여 명의 사람과 50여 명의 봉사자가 스님과의 행복한 대화를 위해 모였습니다.

스님이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습니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었지요?”

“(대중들) 예.”

“봄날에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무리 날씨가 춥더라도 때가 되면 다 봄이 옵니다. 가지에 꽃이 피고, 잎이 나면서 새봄을 맞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마음도 봄날처럼 따뜻합니까? 옛 사람들은 마음에 봄이 오지 않았을 때 ‘봄은 왔지만 정말 봄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이 ‘행복학교’에서 주최하는 강연은 우리들의 마음에 참다운 봄이 오도록 하는 강연입니다. 또,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도 지금 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처럼 왔다가 또 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전쟁을 멈추고 휴전협정을 맺은 후 보통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전쟁을 종식하고 전쟁교전국 사이에 국교도 정상화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 36년간 억압을 받았지만 해방된 이후 20년 만에 한·일 수교가 이루어졌고, 6·25전쟁 때 중국이 100만 군대를 보내서 우리와 교전을 했지만, 지금부터 25년 전, 즉 정전 후 39년 만에 한중국교도 정상화됐습니다. 그런데 남북 간, 북미 간에는 정전 65주년이 되도록 아직 전쟁이 종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잘 살다가도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특히 작년에는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렇게 위기감이 고조되니까 전 세계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며 매우 우려스럽게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대화를 하였고, 현재 북미 간에도 물밑 접촉을 하면서 대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보시다시피, 북한과 중국 간에도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한반도에 고조되던 전쟁 위기가 가라앉고 평화가 도래할 것인지, 나아가 65년간 불안정한 냉전구조로 유지되어온 이 정전체제가 종식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인지 하는 갈림길에 있습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잘 이루어져서 한반도에도 진정한 봄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올봄에 3개의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계절의 봄, 한반도의 봄, 우리 마음의 봄. (모두 박수)

이 중 2개의 봄은 우리 마음대로 못 합니다. 그런데 그 2개의 봄이 도래할 징조는 보이는데, 가장 중요한 우리 마음의 봄은 우리가 만들어야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건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괴롭다든지, 슬프다든지, 외롭다든지, 밉다든지,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든지 하는 건 ‘마음이 겨울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고, 밝고, 가벼우면 ‘마음이 봄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마음이 무거우신 분들, 또 괴로우신 분들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봄을 맞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들은 대부분 마음이 겨울인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겨울을 맞고 있는지 얘기도 들어보고, 또 어떻게 하면 함께 봄을 맞을 수 있는지 방법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봄과 현재 한반도 정세에 관한 말씀을 언급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총 8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간질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60대 여성분, 로미오와 줄리엣같이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만 3주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 다시 사랑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대학생, 계획을 세워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일에 떠밀리는 꿈을 꾸거나 잠시 쉬는 시간조차 불안함을 느낀다는 중년 여성분, 남편과 40여 년 살아오면서 고통스러운 일이 있는데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협을 접하고 나니 남편과의 다툼은 새우 싸움 정도로 느껴진다는 여성분, 아이가 자라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니 아이의 빈방만 보면 힘이 드는데 정작 아이는 엄마를 짐같이 느낀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분,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20대 청년, 투병 중인 친정 언니가 음식 조절 못 하는 것을 볼 때 화가 나고, 그런 언니를 돌보는 친정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괴롭다는 40대 여성분, 이혼한 부모님의 지원 중단으로 유학을 포기해야 할지 묻는 20대 여성분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오늘은 그 중, 공감을 못 해서 고민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저는 제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잘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영화, 시, 가사만 들어도 울컥하거나 잘 울어서 주변 사람들은 저를 굉장히 감수성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주변에 힘들거나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고민을 들어주거나 위로해 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축하해 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최근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만 번지르르했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울어도 ‘이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마음에 들어 할까?’ 생각만 했지, 진심으로 그 사람과 같이 마음 아파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쁜 일이 있어도 그냥 축하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축하했지, 진심으로 같이 기뻐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지난주에 이 근처 가파른 계단 앞에서 할머니 한 분께서 넘어지신 일이 있었는데, 제가 달려가서 도와드리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니 그냥 그런 분이 계시면 도와드려야 하므로 가서 도와드렸을 뿐 할머니께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어떡하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진 않았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답시고 뭔가를 해도 어색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어할 때 같이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쁠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욕심이 많아요. 질문자 얘기를 들어보니 지극히 정상이에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래도 누가 고민을 얘기하면 진심으로 같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지하철에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뵙게 되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드물게 있잖아요.”

“그런 사람도 드물게 있지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렇게 안 생겼는데 어떻게 그렇게 돼요. 질문자가 백인을 보면 ‘나도 얼굴이 하얬으면 좋겠다’, 흑인을 보면 ‘나도 얼굴이 검었으면 좋겠다’, 여자를 보면 ‘나도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건 될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럼 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모두 웃음)

“아무 문제가 없다니까요. 얼굴이 하얘도 문제가 없고, 검어도 문제가 없고, 여자라도 문제가 없듯이 지금 질문자가 얘기하는 그런 정도는 사람으로서 아무 결격사유가 없어요. 아무 문제는 없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넘어진 걸 보고도 그냥 갈 길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가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드린 건 잘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 할머니가 집까지 어떻게 가시겠나 싶어서 모셔다드리는 사람은 10명 중의 1명도 안돼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꼭 ‘좋다’고도 할 수 없고요.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죽을 지경일 테니까요. 남편이란 사람이 계속 남의 일만 돕고 다니면 집안이 어떻게 되겠어요? (모두 웃음) 그래서 그런 사람이 있는 건 맞는데, 그렇게 하는 게 꼭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또 반대로, 누가 넘어지거나 구걸해도 아무런 행동도 안 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걸 보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10명 중의 1명이라면 관심도 없는 사람도 10명 중의 1명이에요. 그 사람이 특별한 걸까요?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겼을 뿐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쪽 끝도 아니고, 저쪽 끝도 아니고, 중간이에요. 보통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스님의 말씀은 정말 잘 알겠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자괴감이 들고 힘들고...”

“그게 욕심이라는 거예요. ‘내가 얼굴이 하얘지고 싶은데 얼굴이 너무 검어서 자괴감이 든다’ 라고 말할 순 있어요. 그런데 그 자괴감이라는 게 얼굴이 검기 때문에 온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얼굴이 하얘지고 싶다는 것도 정상이고, 하얗게 되지 않는 것도 현실인데, 그 둘이 부딪치면 자괴감이라는 게 생기는 거예요. 그럼 자괴감이 안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얘지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수술하거나 어떻게 해서 하얗게 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고, ‘하얘지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면 자괴감이 없어져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막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버리면 질문자는 자괴감이 안 생겨요. 제 말을 이해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는 거로...” (모두 웃음)

“질문자가 볼 때 간호사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를 보면 막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든 살려주려고 애달아할 것 같아요? 아니면 그냥 할 일을 할 것 같아요? 물론 간호사나 의사 중에는 환자를 마치 자기 가족처럼 치료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10명 중에 1명도 안돼요. 반대로 과잉진료를 하는 등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도 10명 중에 1명이에요. 다수는 어떤 때는 환자에게 잘하다가, 어떤 때는 또 지쳐서 귀찮아하는 등 어떤 날은 이랬다가 어떤 날은 저랬다가 그러는 거예요. 이 세상에 질문자 같은 사람이 다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문제가 전혀 없어요.”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해 보세요.”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알고도 모른척해야 하는 일들을 모른 척하지 못 하고 어디서 본 것만 가지고 잘 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특히 공부하면서 별로 힘들지도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죽겠다, 죽겠다’ 하는 제 모습이 자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나거든요. 제가 약간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제가 착한 척, 아는 척, 공부 열심히 하는 척하는 걸 그때그때 깨달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걸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 깨닫고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지극히 정상이에요. (모두 웃음)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 그래요. 다 칭찬해 주면 좋아하지요?”

“(대중들) 예.”

“오늘 스님 법문 끝난 뒤에 ‘스님, 법문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고민도 해결이 됐습니다.’ 하고 박수를 우레와 같이 쳐주면 저도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대중들) 좋아요.”

“좋긴 한데, 그래도 좀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데, (모두 웃음) 제가 막 계속 아는 척만 해대니까요.”

“괜찮아요. 젊은이가 그 정도 잘난 척하는 건 괜찮아요. 크게 문제가 안 돼요. 늙어서까지 그러면 조금 문제죠. 주책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늙어서 안 그럴 걸 미리, 지금 안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모두 웃음)

“남한테 잘 보여서 뭐할 건데요?”

“그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한참 뒤에 돌아보면 이해가 되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입이 막 나불, 나불거리니까요.” (모두 웃음)

“그게 사람마다 갖고 있는 성질이라는 거에요. 성질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질문자가 어릴 때 엄마나 아빠나 누군가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아서 엄마,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좀 애를 썼거나 하는 상처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걸 ‘사랑고파병’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렇게 껄떡거리는 거예요. 칭찬받고 싶고, 내가 뭘 하면 남이 알아주길 원하고, 이렇게 ‘고파병’, 늘 배가 좀 고픈 병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런 병이 없게 하려면 부모는 아이가 3살 때까지는 극진히 사랑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무의식적인 병이 안 생깁니다. 생겨도 덜 하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어릴 때 막 엄마한테 자랑하려고 하고, 어리광 피우고 하는 걸 내치면 아이들은 마음이 안 채워져서 이 고파병에 걸리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남한테 이렇게 껄떡거리는데, 나중에는 어떤 여자한테 껄떡거리게 돼요. 그 여자가 그걸 좀 봐주면 금방 좋아져서 연애하게 되는데, 그 여자도 또 껄떡거리는 게 있어서 서로 껄떡거리게 되면 서로 안 채워져서 또 헤어지게 되고, 또 다른 사람 만나게 되고, 그렇게 반복되는 거예요. 우리가 다 그런 병이 있는데, 질문자가 자꾸 그런 얘기를 하니까 질문자가 남보다 조금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에요. 지극히 정상이에요. 보통사람이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껄떡거리는 병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질문자의 두 가지 질문을 모두 들어보니, 자기가 ‘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강해요. 그러다 보니까 정상인 자기가 자꾸 문제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안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냥 ‘아, 내가 좀 껄떡거렸구나. 내가 좀 남을 의식했구나.’ 그러고 마세요. ‘나는 잘못됐다’ 그러지 말고요. 그냥 그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돼요. 그래야 자괴감이 안 들어요.

질문자는 지금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요. 그런 자신을 용서 못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질문자는 지금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에요. 키도 괜찮고, 인물도 괜찮고, 껄떡거리는 것도 그 정도면 괜찮고, 자비심도 그 정도면 됐어요. (모두 웃음) 넘어진 할머니를 부축해 주는 정도면 됐어요. 마음이 있든 없든, 남 눈치 봐가면서 부축해 주는 정도면 됐어요. 요즘 젊은이 중에 노인석에 앉아 있다가 노인이 버스에 타면 일어나기 싫지만 남 눈치 봐서 슬쩍 일어나주는 것만 해도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대중들) 괜찮아요.”

“그게 진심이었냐? 이런 건 너무 따지지 마세요.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려고 하네요.”

20대 청년의 고민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도 하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심각한 질문에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명쾌한 말씀에는 함께 박수 치며 마치 자기 일이 해결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마음의 겨울을 채 벗지 못하고 강연장에 들어선 사람들이 봄처럼 따뜻한 얼굴로 강연장을 떠나는 것을 보니 오늘 강연이 봄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빈방을 보니 힘들다고 한 질문자가 스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질문한 소감을 물으니 ‘부끄럽지만, 저에게는 엄청나게 심각한 고민이었거든요.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는 달리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또 별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하며 시원섭섭해 했습니다.

오늘 스님의하루를 기록한 희망리포터 박상미입니다. 질문자와 청중들의 반응을 자세히 관찰하며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강연장에 모인 사람들이 질문자의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잘난 사람이 아니어도 이렇게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해받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행복학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 후 강연장을 나갔습니다.

내일 오전에는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수행법회 생방송 법문을 한 후, 오후에는 대구로 이동해 대구 시민들과 함께 행복한대화 강연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연희, 고영훈, 박상미,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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