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틀 동안의 꽃샘추위를 뒤로 하고 죽림정사 가는 길엔 벚꽃, 개나리 등 봄꽃들이 만발하여 저마다의 봄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용성진종조사 78주기 열반일을 맞아 용성진종조사의 탄생지인 죽림정사에서 350여 명의 대중과 기념법회 및 적멸보궁불사리 3층 석탑 조성 천일기도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전국 불교대학, 경전반 학생과 활동가들이 죽림정사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례 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일찍 죽림정사에 도착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앞줄부터 앉아서 다례 재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다례재가 끝나고 자리정돈이 있은 후, 10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의례와 애국자 제창이 이어졌고, 곧이어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이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 정광 사무국장이 나와 용성진종조사 행장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다음은 법륜스님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어수선할 때 허물어가는 조선 불교를 중흥시키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를 이끄신 이야기, 독립운동을 넘어서 다가 올 대한민국의 미래의 꿈을 그리며 살아오신 이야기 등에서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오늘 용성진종조사 열반절 78주기 기념식에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환영합니다. 특히,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오늘의 법회를 증명해주시고 설법을 해주시게 되어 큰스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용성 조사께서는 1864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는 조선 말엽으로 한참 나라가 어렵고 어수선한 시기였고,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께서 순교하신 해였습니다. 용성조사께서는 이곳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나셔서 16세에 남원 교룡산성 덕밀암에서 출가하셔서 수행 정진하시고,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조사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대자비심을 가지고 중생구제를 위해 평생을 활동하셨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공덕을 살펴본다면 하나는 허물어져 가는 조선의 불교를 중흥시킨 선구자로 이 땅의 불교를 새롭게 하신 공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의 횃불을 높이 드신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성조사께서는 조선 불교를 다시 일으킨 근세 불교 중흥조로서의 역할로 우선 수행의 본분을 잃어버린 불교계에 5대 수행관을 확립하여 ‘불교의 지성화’에 앞장서셨습니다. 또 복만 비는 기복 신자로 전락한 재가 수행자들에게도 진정한 재가 수행자로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삼귀의 오계를 주셨습니다. 둘째, ‘불교의 대중화’를 통해 많은 대중들이 불법을 제대로 알도록 하셨습니다. 대중화 작업의 일환으로 한문으로 되어있던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하시고, 대중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 최초 포교당인 대각사를 세우셨습니다. 셋째, 부처님의 가르침이 산 중이나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 즉 ‘불교의 생활화’를 제창하셨습니다. 홀로 산속에 들어가서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또 일하면서 수행하는 선농지와 화과원을 만들어 생활 불교를 강조하셨습니다.

민족중흥을 위해서는 우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셨고, 그것을 넘어서서 미래의 대한민국의 꿈을 열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과거에 지은 잘못이 원인이 되어, 나라를 빼앗기고 또 분단되는 고통의 과보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모두가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복을 지어간다면 해방 80년 후에는 800년의 대문을 맞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다며 미래를 내다보셨습니다.

우리는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국면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6.25 전쟁 이후 65년 간 유지되어 온 휴전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길목, 즉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2024년까지는 남북 관계에서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2024년이 되면 대한민국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국면이 열릴 것입니다.

용성조사께서 이를 유훈으로 남기셨고,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그 유훈을 받들고 계십니다. 이에 맞추어 오늘은 도문 큰스님께서 국운을 비는 천일기도에 입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기념식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큰스님의 용성조사 연반 78주기 법문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작년만 해도 전쟁의 위기에 있었던 대한민국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물결에 들어서고 있는데, 앞으로 2024년이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내빈으로 초대된 장수군 부 군수님의 축사를 들은 후 다 함께 힘찬 목소리로 ‘온 겨레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3절까지 이어진 대중의 합창이 끝난 후 수승행 한명옥 님의 사리탑 조성 33개월 천일기도 발원문을 들었습니다.

다음은 법륜스님의 스승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의 입재 법문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청중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화기애애하고 재미난 법문이었습니다.

큰스님 법문에 이어 법륜스님은 용성진종조사님의 법맥을 다시 한번 자세히 짚어주시고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한 분이 용기 내어 일어나 질문하였는데, 최근 대두되고 있는 사회이슈인 미투 운동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스님은 미투 운동의 기본개념과 함께 어떤 경우에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그 경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스님의 긴 설명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자유와 평등, 법과 권리를 사회에 적용하는 사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사진 촬영과 점심공양이 이어졌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여광법사님의 소개로 사찰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용성조사의 탄생과 열반까지, 독립운동의 과정에서는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례가 끝난 후 죽림정사에서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 참석한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어제 일찍 올라오신 정연심 님은 “도문스님의 짧고 명료하면서도 쩌렁쩌렁 울리는 법문이 마음 깊이 길게 남는다” 하였고, 봄 불교대학생인 전연순 님은 “절 외벽에 그려진 그림을 아무 생각 없이 봐왔는데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라고 합니다. 불교대학 담당이신 황희선 님도 “80세가 훨씬 넘었는데도 당당하고 힘차게 법문 하신 불심 도문 큰스님의 법문이 여운이 남으면서 아름답게 느껴졌다”라고 하였습니다.

꽃샘추위도 지난 오늘 하루, 죽림정사에서 도반들과 법비를 흠뻑 맞으며 가슴 뛰는 봄을 맞이한 기분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 세대까지 내려오는 순국선열의 얼과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한반도의 분위기와 더불어 용성 진종조사의 정신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강현주, 임도영,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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