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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하루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밉습니다.” / 법륜스님의 하루 20180104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밉습니다.”

2018.1.4 인도 바라나시 도착

숙소에서 아침 기도를 마친 후 간단하게 인도식으로 아침식사를 한 스님은 델리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라고 하더라도 인도 공항은 항상 붐비고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일찍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또 어제 공항에서 숙소까지 타고 온 택시 기사 분에게 오늘 숙소에서 델리 공항으로 갈 수 있도록 미리 택시를 예약을 했었습니다. 인도라는 곳을 감안해서 조금 여유있게 오도록 했었는데, 택시 기사 분이 약속된 7시 30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그동안 인도 사람들은 약속시간보다 항상 늦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인도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델리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인도의 짙은 안개로 인해 바라나시행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정도 연기되어 11시경 바라나시로 향했습니다.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느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성지순례 온 불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짐을 찾아서 밖으로 나오니 인도JTS 활동가인 김윤미 법우님이 스님을 반갑게 마중하였습니다.

다른 활동가들은 차량의 자리가 부족해서 숙소에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라나시 숙소에 도착해서 인도 활동가들의 인사를 받은 후 현지에서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 등 한국에서 온 업무를 처리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강연이나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에 한국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즉문즉설 내용을 함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너무 미워서 스님의 고견을 듣고자 질문을 드립니다.”

“도저히 미워서 안 되면 ‘안녕히계십시오’ 하고 안 살면 돼요. (청중 웃음) 간단해요. 근데 뭐가 문제인지 이야기 해봐요.”

“며칠 전에 남편이 식탁 위에 서류를 하나 올려놓았어요.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복지 시설로 3박 4일 동안 휴가를 떠나는 서류였어요. 제가 누가 가는 것인지 물어봤는데 남편이 대답은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는 거예요. 평소에도 성격이 조금 그래요. 뭘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하고 굳은 얼굴로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때는 ‘또 저런가보다’하고 넘어갔어요.

그 휴가 기간은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였는데, 일요일 밤에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17살 딸이 하나 있는데 딸에게 물어보니 아빠가 그 복지 시설이 있는 곳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남편이 딸을 학교에서 데려오는데 딸한테는 이번 주에 못 데려다준다고 이야기를 하고 떠났나봐요.

그래서 일요일에는 참고 넘어가고 그 다음날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고 다시 전화를 걸어주지도 않았어요. 화요일이 되어 집에 돌아왔길래 누구랑 같이 거기에 갔는지 물어봤는데 ‘내가 누구랑 가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 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전화는 왜 안 받았는지 물어보니까 ‘내가 네 전화를 왜 받냐,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라고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10년 전부터 지금과 비슷한 상태였는데, 딸이 있어서 지금까지 참고 살아왔어요. 이제 딸이 스무살이 되기까지 2년이 남았는데 이 남은 2년을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남편과 헤어지면 딸에게 충격도 있고,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떻게든 남은 2년을 참고,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안녕히계십시오’를 해야할 것 같은데 남편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은 마음이 올라와요. 이런 상태로 살면 저도 병이 들 것 같고, 집안 분위기는 원래도 그리 좋지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안 좋으면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애지중지 아이를 키워왔는데 제가 부족한 건지, 남편이 심한 건지, 제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2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청중 웃음)

“딸하고 의논을 한 번 해봐요. ‘너를 위해서 2년은 더 살려고 하는데 버티기가 힘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렇게 한 번 물어봐요. 딸이 ‘2년 더 기다릴 것 없어. 일찍 그만둬도 괜찮아’ 이렇게 말하면 이혼을 결정하면 되고, 딸이 ‘나 대학가고 나면 결정해’ 라고 말하면 2년 기다려야죠.”

“딸이 13살일 때 이와 비슷한 고비가 있었는데 당시에 딸도 아빠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았는지 둘이서 같이 살 집도 보러 다니고 그랬어요.”

“딸 교육 잘 시켰네요. (청중 웃음) 집을 봐야 되면 혼자 보러다니면 되지 왜 아이를 데리고 다녀요?”

“실제로도 아이가 말은 그렇게 해도 같이 보러 다니는 동안 정서가 많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위로를 하고 넘어갔는데…”

“앞으로 질문자 얘기대로라면 2년을 더 살고자 하는 거잖아요?”

“네.”

“그러면 2년을 같이 사는 동안 원수처럼 지내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같이 살아봐야 2년인데 이 2년이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좋겠어요?”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제가 이런 저런 노력을 해봐도 이 남자한테 제가 정서적인 학대를 받는 느낌을 받아요.”

“질문자가 남편한테 정서적인 학대를 받아요, 질문자가 하는 말에 남편이 정서적인 학대를 받아요? (청중 웃음)”

“네?”

‘’남편이 질문자한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건 학대를 받는 입장에서 주로 하는 말이에요. ‘내가 어딜 가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이 말은 남편이 ‘나 당신 때문에 힘들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서류를 보여준 건 수련회에 3박 4일 동안 다녀오겠다는 이야기예요.”

“네.”

“우리도 문경에서 4박 5일 동안 운영하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번에 남편이 다녀온 것보다 하루 더 긴 프로그램인데, 거기는 한 번 시작하면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연락을 안 해주고 수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요. 남편이 얼마나 괴로우면 그런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했겠어요? 남편도 뭔가 노력해보려고 들어간 거 아니겠어요?

그런 걸 보면서 ‘남편도 살기가 힘들구나, 힘이 들어서 그러는구나’ 이렇게 마음을 내어보면 어떨까요?”

“저도 남편이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을 해봤는데,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남편이 바람이 났는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또 친구끼리 갔는데 나한테 비밀로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누구하고 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2년 뒤면 헤어질 사람인데 (청중 웃음) 이야기 들어보면 영원히 안 헤어질 것처럼 말하네요. (청중 웃음) 헤어질 사람이니 얼른 다른 여자가 생겨야 2년 뒤에 자기가 떠날 때 그래도 마음이 놓여서 떠나기가 쉽죠.”

“그런 생각도 들긴 드는데, 제가 마음이 왔다갔다 해요.”

“왔다갔다 하는 건 자기의 마음이에요, 남편의 마음이에요?”

“제 마음이요.”

“그러니 그건 자기 문제예요.”

“네.”

“2년 후에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니까 앞으로 2년 동안은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귀면 좋다, 빨리빨리 사귀어라’ 이런 마음으로 (청중 웃음) 그래야 내가 마음 놓고 떠나지, 그러지 않으면 헤어진 뒤에 질문자가 또 남편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후회하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러니 남편이 수련에 가든지 뭘 하든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앞으로 2년 동안 같이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렇게 살아보고 괜찮으면 연장해도 돼요. (청중 웃음)”

“연장은 안 될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지금은 살기가 힘드니까 연장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막상 2년을 재밌게 살아보면 또 몰라요. 그러니 일단 앞으로 2년 동안을 재미있게 살아봐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면 ‘내가 왜 이걸하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질문자가 앞으로 2년 남았다고 하니까 그 2년은 노력 조금 하면서 살 수 있잖아요?”

“남편이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그래야 제가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답을 하기가 싫은데 어떡해요? (청중 웃음) 대답하기 싫은 사람한테 자기가 묻지 않으면 되잖아요. 남편 말은 들어주기만 하고 자기는 묻지 않으면 되잖아요.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다녀오셨어요’라고만 하면 되지 ‘어디 갔다 왔어?’하고 묻지 않으면 돼요. 그건 추궁이잖아요.”

“제가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해요.”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추궁은 추궁이에요. (청중 웃음) 스님이 예전에 경찰한테 붙잡혀서 고문당할 때 일인데, 고문할 때 두들겨 패는 사람도 있지만 와서 담배주고 설렁탕 사주면서 살살 꼬시는 사람도 있어요. (청중 웃음) 그런데 둘 다 똑같은 거예요. 한 사람은 때리고 협박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유혹하고 회유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사람이에요. 그 둘의 목적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똑같아요.

질문자도 성질을 내면서 말하든 부드럽게 말하든 목적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거잖아요. 목적이 같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하든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남편이 수련에 참가한 것을 보고 요즘 많이 힘들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요즘 힘들어?’ 하고 말을 건넸으면 괜찮았겠죠. 마음을 그렇게 내보세요.”

“그런데 자꾸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요.”

“미워하면 누가 손해예요?”

“…”

“자기가 산을 보고 ‘이야, 이 산 좋다’하고, 꽃을 보고 ‘이 꽃 예쁘다’하면 자기가 좋아요, 산이나 꽃이 좋아요?”

“제가 좋아요.”

“’꽃이 뭐 이렇게 생겼어?’하면 자기가 손해예요 꽃이 손해예요?”

“제가요.”

“그러니 미운 마음을 내면 자기가 자기한테 손해를 끼치는 거지요. 어차피 살 남자라면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자기한테 좋죠. 헤어져도 ‘내가 참 소중한 사람과 10년, 20년을 살았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한테 좋아요.

반면 ‘인간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우선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과 10년, 20년을 같이 산 자기자신이 초라해집니다. 상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도 나쁘게 만들어요. 남편이 개라고 생각하면 자기는 개와 20년 같이 산 사람이 됩니다. 나아가 내 딸은 그런 사람의 자식이 돼요. 그러니 남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곧 자기를 학대하는 사고방식이에요. 자기는 잘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기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는 거예요.

설령 나하고 안 살더라도 ‘그 남자는 참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나도 좋은 사람과 20년 동안 같이 산 사람이 되고, 우리 딸도 좋은 사람을 아버지로 두었으니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자기는 지금 똑똑하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자기한테 손실이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산도 좋아하는데, 아무리 못해도 남편이 산이나 꽃보다는 낫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살아가잖아요.”

“소통이라는 건, 내가 상대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게 소통일까요, 상대가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게 소통일까요?”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거요.”

“그래요.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소통이지, 남이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게 소통이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도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게 소통이지 남편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게 소통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2년 동안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다시 한 번 일어나보세요. (청중 웃음) 자기 지금 마음이 ‘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이러면 되겠구나’하고 밝아졌어요, 아니면 ‘스님하고 이야기해봐야 말이 안 통하는구나’ 싶어서 그냥 앉았어요? (청중 웃음) 솔직하게 한 번 이야기해봐요.”

“두 가지 다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스님이 소통을 잘하는 편인데, 지금 스님하고도 소통이 안 되면 어떻게 남편하고 소통을 하겠어요? (청중 웃음)”

“잘 안 될 것 같긴 해요.”

“뭐라고요?”

“조금 하다가 남편이 또 말을 안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굳은 얼굴을 보이면 잘 안 될 것 같긴 해요.”

“굳은 얼굴은 남편이 제 성질이 나서 얼굴이 굳은 것이지 질문자를 무시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건 그 사람의 성격이에요. 성질이 날 때 말을 안 하거나 얼굴이 굳는 건 그 사람의 성격이지, 질문자를 무시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지금 스님이 대화를 하는 방식이 자기를 추궁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저는 지금 질문자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게끔 하려는 것이지 질문자를 괴롭히려고 추궁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도 질문자 입장에서는 ‘스님은 내가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주셔야지 왜 자꾸 나한테 되묻지?’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각자 자기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 질문자에게는 ‘나는 합리적으로 대하는데 남편의 성격이 문제다’라는 생각이 굳어있다는 거예요.”

“네, 맞아요. (질문자 웃음)”

“그게 아니라는 걸 깨우치려고 지금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거예요.”

“다르게는 도저히 안 되는데…”

“그만큼 질문자의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거예요. ‘내가 옳다, 내가 바르다, 나는 노력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남편의 이야기, 상황, 어려움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거예요.

오늘 강연장에 와서 이 많은 대중들 앞에서 질문을 한 건 그래도 질문자가 스님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온 거잖아요?”

“그럼요.”

“그런 스님이 자기랑 이야기를 한 다음에 남편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자기가 문제라고 이야기를 했으니 자기를 조금 돌아봐야겠어요, 안 돌아봐도 괜찮겠어요?”

“저도 저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지난 10년 동안 노력을 한 거거든요. (모두 웃음)”

“노력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10년 동안 노력을 한 게 더 문제예요. ‘나는 10년 동안 노력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

자기가 말한대로 어차피 2년 동안은 같이 살아야 되잖아요?”

“네.”

“그럼 그 2년 동안은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 지금처럼 냉전 하듯이 괴롭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면 자기가 2년 동안 행복해질 수 있도록, 2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라는 거예요. 악다물고 참으면서 살면 자기 인생에서 2년 손해를 보는 거예요.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2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남편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 인간 왜 저런지 모르겠어’ 이러면 내 가슴이 시원해요, 답답해요?”

“(청중) 답답해요.”

“답답하죠? 반면 ‘아, 저 사람이 그래서 그랬구나’하면 내 가슴이 시원해요, 답답해요?”

“(청중) 시원해요.”

“그러면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어야 시원해요, 내가 저 사람을 이해해야 시원해요?”

“(청중) 내가 이해해야 시원해요.”

“내가 답답하다면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답답한 거예요? 내가 저 사람이 이해되지 않아서 답답한 거예요?”

“(청중)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요.”

“그래요. 질문자가 지금 가슴이 답답한 건 자기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한 거예요.”

“맞는 말씀이긴 한데요 (청중 웃음) 문제는 제가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왔다갔다 해서… 이해가 되었다가 또 성질이 났다가 이렇게 왔다갔다 해요.”

“왔다갔다 하니까 20년 가까이 살았겠죠. 저 인간 안 되겠다 싶었으면 일찌기 이혼을 했을테고, 이해가 되었다면 오늘 이렇게 묻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한 번은 이해가 되었다가 한 번은 미웠다가 하니까, 살까 말까 살까 말까 하다가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거잖아요?”

“네. 그래서 지금은 단호하게 결정을 내려야 되나 싶어요. (질문자 웃음)”

“결정이야 질문자가 알아서 내리면 돼요. 그런데 내가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어차피 질문자 말처럼 앞으로 2년을 같이 살 거라면 괴롭게 사는 거보다는 즐겁게 사는 게 낫다는 거예요. 감옥에 아예 안 가면 모르지만 어떻게 사정이 생겨서 감옥에 2년 동안 가게 되었다면 감옥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게 좋아요, 괴롭게 사는 게 좋아요?”

“즐겁게요.”

“그러니 남편과도 어차피 2년을 같이 살 거라면 즐겁게 사는 게 낫다는 거예요. 그리고 즐겁게 살려면 ‘아, 저 분이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말을 안 했구나, 그래서 얼굴이 굳었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자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남편은 괴롭게 살지 몰라도 자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왜 이 좋은 걸 안 하려고 해요?”

“남편이 아무 말을 안하면 제가 이해할 거리가 없잖아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같이 살기 아주 좋죠. 강아지는 말을 해서 같이 데리고 사나요? (청중 웃음) 애완용 동물을 데리고 살 때 나 혼자 계속 얘기해요, 동물도 같이 얘기해요? ‘이리와 이리와’하면서 혼자서만 계속 말하잖아요. (청중 웃음) 강아지가 무슨 말을 해요? 산이 무슨 말을 하고, 꽃이 무슨 말을 하나요? 그냥 다 내가 좋아하는 거예요.

산에 올라가다가 미끄러졌다고 산을 발로 차버리고 내려오지 않잖아요? (청중 웃음)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올라가면 돼죠. 남편도 산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에요. 내가 그 산을 좋아하면 돼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게 문제네요.”

“행복하려면 좋아하라는 거예요.”

“억지로라도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나처럼 한 번 혼자서 살아보세요. 그러면 어떤 남자든 남자면 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청중 웃음) 남편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 해준다는 점은 이해가 돼요. 그런데 오늘 강연 시작할 때 사람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생각을 돌려서 혼자서 산다고 생각해보면 남편이 그저 남자인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남자인 것만으로도 자기한테 굉장히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돌이켜보라는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기회가 되면 문경의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에 한 번 참가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질문자 생각에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여겨지면, 오늘 제가 남편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질문자한테 ‘남편을 이해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라, 지금 마음이 꽉 닫혀있다’고 말했으니까 ‘스님도 말해보니 남자편이더라’하고 그냥 흘려버리든지 (청중 웃음) 아니면 스님이 나하고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이야기한 걸 보면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조금 귀담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봐요. 지금은 어느 쪽이에요?”

“후자로 생각해요. (청중 박수)”

“후자로 생각하면 첫째 남편을 내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남이라고 생각해요. 남이라고 생각하면 어쨌든 집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한테 아빠 역할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내가 원하는 만큼 안 해주니까 남편이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남편은 내 마음에는 덜 들지라도 다른 쪽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았겠죠. 안 괜찮은 사람이면 벌써 못 살았을 거예요.

아무리 질문자가 남편 욕을 해도 저는 저 분의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렇게 똑똑한 질문자가 남편이 안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20년 동안 같이 안 살았을 거예요. 뭔가 괜찮은 구석이 있으니까 같이 산 거예요. (청중 웃음) 지금은 내 마음에 안 드는 그 부분에만 집중이 되어서 그 남자 전체를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렇게 똑똑하지가 않아요. (질문자 웃음)”

“이야기 들어보면 자기 똑똑이에요. 자기 생각은 모두 다 옳아요. 그게 똑똑한 거죠. 그러니까 엎드려 절을 하면서 ‘남편의 마음을 알겠습니다’하고 기도해보세요. 남편이 지금 많이 외롭습니다. 질문자보다 훨씬 더 외로워요. 남편이 정말 질문자가 싫었다면 집에 오지도 않든지, 그런 서류를 식탁 위에 올려놓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올려놓았다는 건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다’는 아우성이에요.

질문자가 자비심이 있다면 그런 서류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우리 남편이 참 힘들었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정상이에요. 그리고 수련에서 돌아오면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끼면서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묻게 됩니다. ‘어디갔다 왔어? 누구랑 갔다왔어?’ 이렇게 추궁하는 게 아니고요. (청중 웃음) 저도 이런 사람 만날까 싶어서 결혼을 안 했어요. (청중 박장대소)

그러니 절을 하면서 ‘남편의 마음을 알겠습니다’와 ‘저 사람은 남입니다’ 이렇게 다른 두 가지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를 해보세요. 그러면 그 모순이 극복될 거예요. 2년 동안 그렇게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함께 만든 사람들
김경희 조태준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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