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로힝야 관련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방콕에서 출발하신 스님은 아침 7시 20분 쯤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가는 날도 비행기에서 1박을, 오는 날도 비행기에서 1박을 했으니 무박 3일의 일정이 된 셈입니다.

오전 9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손님이 오기로 해서 회관에 도착하여 간단한 정비 후 바로 사무실로 이동하였습니다. 손님 맞이 후에는 명상수련 전 겨울 단도리를 위해 바로 두북으로 이동 하였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 두북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부직포로 덮어둔 상추들이 괜찮은지 열어보니 옹기종기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상추 옆에 부직포로 덮어두었던 열댓포기 남겨둔 배추는 뽑아서 저녁거리로 한포기 남기고 비닐하우스 안에 잘 감싸서 보관해두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화단의 국화들을 베어내고 뿌리가 얼지 않도록 부직포로 잘 덮어주었습니다. 비닐하우스 비닐이 바람에 날려 펄럭이지 않도록 다시 고정하고 비틀어진 하우스문도 수리를 하였습니다.

잘 마른 무청이 바람에 날려 부스러지지 않도록 벽 쪽으로 무청 줄을 붙여 달고 나니 어느새 저녁공양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중앙일보 영자신문에 실릴 칼럼 원고를 교정보시고 명상수련 전에 처리해야할 결재사항들을 꼼꼼히 챙기시느라 늦게까지 스님 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법문이나 강연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월에 열린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지면이 부족해 미처 소개해 드리지 못한 내용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휴가 나온 군인입니다. 전역 시기가 다가오면서 차츰 사회로 돌아갈 준비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매일 잘 때마다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나름 대처한다며 떠오르는 생각을 무시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생각들이 더 피어오르고 맙니다. 어떻게 하면 생각을 덜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쉽지 않은 고민이네요.”

“그 점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네, 우선 쉽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전역은 얼마나 남았어요?”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면 6개월 후에 사회에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10년은 더 군대에 남아있는다고 생각하세요. (청중 웃음) ‘곧 제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대 안에서 10년은 지낸다고 생각하라’는 말은 나오는 순간까지 그곳 생활에 충실하라는 의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군대도 한 번 제대하고 나면 다시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군대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세요. 운동도 실컷하고, 훈련도 실컷하세요.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은 군대 안에 있으니까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게 현명한 태도입니다. 관점을 이렇게 탁 바꾸면 현재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기 전에 준비 과정이 긴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입대라고 해도 오늘 밤까지는 평소처럼 학업을 하다가 내일 아침에 출근하듯이 군대에 가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제대할 때에도 제대하는 날까지 군 생활을 충실히 하다가 제대한 이튿날부터 뭔가를 해도 안 늦어요.

그런데 대개 군대 가기 6개월 전부터 술 마시고 놀잖아요. 그것만 보면 군대 가는 게 굉장한 일처럼 보여요. 그러다가 제대할 때는 또 전역하기 6개월 전부터 ‘나간다, 나간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다가 제대 후 6개월 동안은 또 자리를 못 잡고 놀아요. (청중 웃음) 이건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해외 여행을 갈 때도 떠나기 3일 전부터 부산을 떨다가 여행을 다녀와서는 또 3일을 쉬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여길 가나 저길 가나, 이 일을 하나 저 일을 하나 모두가 다 일상입니다. 그런데 일상이 아닌 것처럼 해서 인생을 낭비합니다.

여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있으면 입대하기 전날까지는 그냥 평소처럼 자기 일을 해야 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 들어보셨죠? 그게 내일 일은 내일 일이고 지금은 일상에 충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지금에 충실하고 현재에 깨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말을 들을 때는 맞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됩니다. 그러면 질문자 같은 경우에 밤에 잠이 잘 안 오면 낮에 운동을 더 많이 해보세요. 군대에서 시키는 훈련에 자기가 스스로 더 추가를 해서 훈련을 받으세요. 사실 시키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더 하면 그만큼 운동이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군복 입혀 놓고 뛰라고 하면 훈련이라고 부르고, 체육복 입혀 놓고 뛰라고 하면 운동이라고 해요. (청중 웃음) 군복 입혀서 산에 오르라고 하면 훈련이라면서 하기 싫어하고, 가방 둘러메고 산에 오르는 건 등산이라며 좋아하는 것과 같은 모순이에요.

이건 모두 생각의 문제입니다. 군복 입고 총 들고 산에 올라가는 건 훈련이라고 싫어하고, 베낭 메고 산에 올라가는 건 즐거워하는데, 이건 모두 생각의 문제예요. 그러니 질문자도 군대 생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 있는 동안 마음껏 체력 단련도 하고 다시는 못 돌아오는 이 곳 생활을 잘해보자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저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그곳 생활을 만끽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날 나가라고 했는데, 저는 처음에 안 나가려고 했어요.(청중 웃음) 들어갈 때는 안 들어가겠다고 해도 들여보내더니 나갈 때는 안 나가겠다고 해도 억지로 내보냅니다. (청중 웃음) 처음에는 들어가기 싫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집중하다보면 나중에 나가라고 할 때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면 안 됩니까?’ 하게 돼요. 그때는 이제 감옥이 더 이상 감옥이 아닙니다.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게 할 때는 그곳이 감옥이지만 나가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지면 그곳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닙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한 방식으로 무문관(無門關)이라는 게 있습니다. 작은 방 안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이렇게 일정한 기간 동안 밥도 그 안에서 먹고 대소변도 그 안에서 해결하고 음식만 때가 되면 밖에서 넣어주는 수행법이에요. 완전한 독방 생활이죠. 그런데 갇혔다고 생각하는 대신 밖에서 문을 열어주려고 해도 안에서 걸어잠그고 안 열어줄 정도가 되면 그 속에서도 완전한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자꾸 나갈 생각을 하고 ‘나가면 뭐하지?’하니까 잡념이 떠오르는데, 지금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면 그 생각이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면 낮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밤에 잘 때가 되면 그냥 잠자세요. 그것도 안 통하면 신경안정제를 구해서 잠자는 시간에 반 알 정도만 먹어봐요.

여기 밤에 잠이 안 들어서 고민하시는 분들도 되도록 낮에 운동을 많이 해서 몸을 피곤하게 하고 밤에는 포도주를 한 잔 마시든지 해서 잠을 자도록 해보세요. 잠도 습관입니다. 자꾸 자면 잠이 늘고, 자꾸 안 자면 잠이 줄어듭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부터 마음을 군대에서 10년 지낼 것처럼 가지세요. 그러다가 6개월 후에 나가라고 하면 ‘어, 아직 9년 반이나 남았는데요’하고 안 나가겠다고 버틸 정도가 되어야 해요. 군에 말뚝 박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면 번뇌가 없어집니다.”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공지]

내일(26일)부터 30일까지는 4박 5일 동안 동안거 명상수련이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립니다. 스님은 대중들에게 명상수련을 안내하며 묵언 및 단식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명상수련 기간 동안 스님의 하루도 묵언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31일부터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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