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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 법륜스님 즉문즉설

[즉문즉설 44

어릴 때 저를 방치한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질문자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돌봄을 못 받고 자란 고등학생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점차 다혈질이면서도 소극적인 성격으로 자랐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도 끼치고 왕따도 당했습니다.다른 가정이 있는데다 지병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는 매일 힘들어하셨고, 누나도 엄마 못지않게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요즘에는 어릴 때 친구들에게 저질렀던 잘못까지 떠올라 죄책감이 들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원망스럽고 마음도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법륜스님 , 질문자의 힘든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질문자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뭘 잘못했는지 한 번 이야기해 봐요.

 

질문자 어릴 때 제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친구 집에서 노는데, 친구가 실수로 던진 공에 맞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울었고 친구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 모습에 화가 난 저는 충동적으로 친구네 밥상을 엎고 나왔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목이 아파 신음소리를 냈더니 한 친구가 소리를 그만 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양해보다는 짜증부터 냈고 급기야 싸움까지 갔습니다. 따지고 보면 짜증부터 낸 제 잘못이 큰데 말입니다.”

 

두 경우 다 아무 잘못이 없어요. 첫 번째는 질문자도 어려서 일어난 일이고, 두 번째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병이 있기에 일어난 일이에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감정이 올라와도 그걸 어느 정도 제어할 힘이 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안 내기도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무슨 연유인지 충동제어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요. 그러니 질문자는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충동이 올라올 때 그걸 제어할 수 없어서 생기는 경우기 때문에 우선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죠? 이런 때는 치료를 해야 합니다. 죄의식은 가질 필요가 없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그 부분을 고쳐나가는 거예요.

 

지금 필요한 건 원망과 죄의식이 아닌 치료가 먼저

 

문제는 질문자가 겪는 첫 번째 어려움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다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 죄의식은 갖지 않되 필요한 치료는 해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또 한 가지 질문자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듯이 엄마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엄마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엄마에게 피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엄마가 나쁜 사람이거나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엄마 역시도 감정 조절이 안됐기 때문이에요. 만약 질문자가 어릴 때부터 ', 우리 엄마가 저런 어려움이 있구나' 하고 알았으면 아무런 상처를 안 받았을 텐데, 질문자도 그걸 모르니까 '나는 엄마한테 사랑 받지 못했어, 엄마 때문에 피해를 입었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질문자는 두 가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저는 편안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제가 어리고 잘 몰라서 어머니를 미워했습니다. 알고 보니 미워할 일이 없네요. 오히려 감사 합니다' 하는 감사기도를 해야 해요.

 

이건 수행의 관점에서 알려줄 수 있는 장기적 치료법이에요. 그런데 질문자의 상태를 봤을 때 우선 병원부터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병원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네가 미쳤냐, 왜 병원에 가냐' 하겠지만 그건 이런 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병원에 가서 전문가와 상담하고, 의사선생님이 '이 정도면 별도의 치료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면 조금 전 알려준 기도만 꾸준히 하면 돼요.

 

하지만 진료결과 '충동이 일어날 때는 이런 약을 드세요'하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상태가 호전 돼 '이제는 약을 그만 드셔도 괜찮습니다' 해도 만에 하나 긴급상황에 대비해서 비상약을 갖고 다니세요. 예기치 못한 충동이 일어나면 바로 약을 먹는 게 좋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약 먹으라하면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 평생 먹어야 하나요?' 하고 걱정을 하는데, 삼시 세끼 챙겨먹는 밥은 평생 먹어도 걱정 안 하면서 왜 약 먹는 걸 걱정하는지 모르겠어요. (청중 웃음) 그러니 약 먹는 걸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시겠지요?

 

.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우리의 정신작용 중에 자각하는 자정 기능이 있어서 자기가 자기 병을 자각 하면 그때부터는 병에서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가령 우울증이 있어도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증상이 나타나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습니다. 이 알아차림은 인간의 정신작용 중에 가장 위대한 정신작용이에요. 내가 나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알아차림은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 내가 나를 알고만 있어도 벌써 소크라테스 수준, 성인의 수준입니다. (청중 웃음)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맞아요. 사람은 훌륭하게 되려고 노력해서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 내가 지금 화가 나네, 내가 욕심이 많네, 지금 짜증이 나네, 내가 흥분되네' 하고 알아차림을 통해서 더 이상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거예요. ‘화내면 안 돼!' 하고 참으면 언젠가 터집니다. 그러니 알아차림을 꾸준히 해나가면 점차 자정 능력이 생깁니다.

 

수행은 결심과 각오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못갑니다. 참는 것도 오래가지 못해요. 참다가도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하거나 '보자보자 하니까 이게!' 하면서 대체로 세 번 만에 터집니다. (청중 웃음) 그런 다음에는 ', 내가 그때 그걸 못 참아가지고, 내가 내 성질을 못 이겨서..' 하는 후회와 함께 자기학대로 이어져 자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열심히 하자, 잘하자' 하면서 각오를 다지는데, 자꾸 각오를 다지며 인생을 살면 피곤해집니다. 인생에는 각오하고 결심할 게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이에요.

 

그러다 조금 변화가 필요하다 싶으면 알아차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변화를 바라지 않으면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변화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알아차림.”

 

, 변화를 바란다면 내 현재 상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 내가 화가 나네. , 내가 짜증이 나네. , 내가 욕심을 내네.

 

이렇게 자기가 어떤지 알아차리다 보면 자기 운명, 자기 카르마로부터 벗어나서 해방의 길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을 '부처, 붓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부처, 붓다란 어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업식, 자기 습관, 자기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청중 박수)

 

 

알아차림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자유로운 삶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