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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하루

[법륜스님의 하루]"여러분은 울 일이 없어야 해요. 알았죠"


2016.10.24 애광원 가을 나들이 


오늘 하루 동안 행복하셨나요? 


오늘은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선암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2003년 태풍 매미 피해 지원으로 시작된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과 정토회 법륜 스님의 인연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한국 JTS 사업의 일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애광원 식구들의 바깥나들이를 지원하는 모습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거동이 블편한 이들의 나들이에는 많은 봉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 선암사 주차장에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 40여 명의 원생들과 김임순 원장님, 송우정 상임이사님, 그리고 9명의 선생님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생 한 명마다 봉사자 1명이 하루를 책임지는 친구로 배정되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여 년 간 매년 스님을 만나와서 그런지 이제는 스님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원생들과 봉사자들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인사 말씀과 더불어 선암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비가 와서 오늘 소풍을 걱정했는데, 마침 날씨가 좋네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햇살 때문에 걱정이고, 비가 오면 비 때문에 걱정인데, 구름이 적당하게 끼어서 산책하기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의 은총인가봐요. 하하하. (웃음)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선암사입니다. 순천 조계산을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두 개의 절이 있습니다. 동쪽으로 선암사가 있고, 서쪽으로 송광사가 있어요. 두 곳이 모두 아주 유명한 절인데, 송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 사찰이예요. 선암사는 조계종 소속이 아니고 태고종 소속의 절인데, 이곳은 돈이 없어서 그런지 새로 건물을 안 짓고 대부분 옛날 건물을 수리해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손본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여러분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절을 산책할 수 있어서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후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서 산책을 하게 됩니다. 오늘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출발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원생들의 노래 소리가 곳곳에서 흥얼흥얼 나왔습니다. 다같이 손을 하늘 높이 들며 “출발!” 하고 외친 후 선암사 일주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숲길을 올라가니 신선이 승천하는 곳이라는 ‘승선교’와 신선이 내려 앉는다는 곳인 ‘강선루’를 차례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낮은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니 대웅전과 지장전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소박하게 생긴 담벼락을 가르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여기 담벼락과 골목 좀 보세요. 꼭 시골 동네에 온 것 같죠.”





원생들도 가볍게 웃음을 띠었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구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손짓, 얼굴 표정, 목소리를 동원해서 나름의 감정들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이 절에는 ‘선암매’라고 해서 매실 나무가 유명한데, 봄이 되면 매화꽃이 핀 이 매실 나무를 구경하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멀리서 오더니 알 수 없는 말로 스님에게 뭐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도 못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옆에 있던 애광원 선생님이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왜? 스님이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고?“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꺼 있어. 제 명찰 좀 가져다 주세요." 라고 대답하며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그제서야 이 분도 활짝 웃음을 보였습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 천사들과 같은 분들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장전 앞에 도착하자 스님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앞에 보이는 건물은 지장전입니다.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예요. 지장보살은 어떤 분일까요? 우리는 보통 지옥이 있다고 하면 ‘나만 착한 일을 해서 지옥 안 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지장보살은 ‘지옥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면 나도 너도 모두 지옥에 갈 일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나는 지옥에 한 중생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겠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나의 원이지만 그 원을 뒤로 미루고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 뒤에 나는 부처가 되겠다’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이런 큰 원을 세운 보살이라고 해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불러요.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해 준다고 하니까 누군가가 죽으면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옥 갈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지장보살이 우리들을 다 구제해 준다고 했으니까요.(모두 웃음) 또 설령 가더라도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 적어도 지장보살은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그분도 함께 있을 거니까요.” 


스님의 설명에 한바탕 웃고 다시 담벼락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담벼락 너머로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스님은 “방 안에 보관해서 홍시가 된 것보다 나무에 달려 있는 채로 홍시가 된 걸 따먹어야 더 맛있어요.” 라고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원통전을 보고,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가지로 그린 팔상전을 지났습니다. 부처님과 위대한 스승을 제자들을 모신 불조전과 조사전을 구경하고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 앞에 이르렀습니다. 소나무 앞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라는 시를 읊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고요한 가운데 시낭송이 끝나자 스님의 한마디가 모두를 또 웃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저 시인처럼 울면 안 돼요. 울 일이 없어야 돼요. 알았죠?”  


스님 말씀처럼 다함께 선암사 소나무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 후 다같이 “선암사, 안녕!” 하고 손을 흔든 후 일주문을 다시 나왔습니다. 



선암사를 내려와서는 다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일대일로 친구가 되어 원생들이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저것 입맛에 맞는 반찬들을 집어 주다 보니 금새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너른 공터에서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누가 노래 잘 해요? 한 번 불러봐요.” 라고 하자 너도 나도 손을 들고 나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애광원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모두들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합니다. 



신나게 노래 부르고, 즐거운 음악에 맞춰 춤도 추며 여흥을 즐긴 후 선암사를 나왔습니다. 



다음은 순천만 습지로 향했습니다. 선암사에서 버스 타고 30분 가량을 이동하니 갈대숲이 드넓게 펼쳐진 큰 정원이 나타났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바람이 일자 북슬북슬한 갈대들이 일제히 이리저리 나부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원생들을 거의 안다시피 하며 부축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갈대숲 사이로 스님과 원생들, 봉사자들이 어우러져 걸어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갈대 숲 곳곳에서는 시 낭송회가 펼쳐졌습니다. 한 번은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이 시를 읊고, 한 번은 법륜 스님이 시를 읊고, 한 번은 애광원 원생 중 한 명이 시를 읊었습니다. 시와 함께 한 풍요로운 산책이었습니다. 



용산전망대에 도착하자 순천만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유장하게 흐르는 물결이 노을빛과 만나니 새로운 절경을 선사했습니다. 




스님과 애광원 식구들은 한껏 손을 흔들며 다시 한 번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전망대를 내려왔습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원장님과 스님에게 마무리 인사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하루 참 행복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 우리 친구들 손을 잡아주고 사랑을 나눠주신 정토회 봉사자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원생들도 여기서 본 갈대처럼 약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의 마무리 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하니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며 어릴 적 부르던 노래 ‘고향의봄’을 불러주는 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네”


“저도 재미있었어요. 저도 애광원 식구들 덕택에 갈대밭을 처음 구경해 봤어요. 손잡고 웃고 다니니까 저도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였어요. 그래서 어릴 때 부르던 노래 하나 불러드리고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렇게 고향 같은 곳에서 늘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가을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마음만 있다고 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의 노력과 도움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써준 애광원 선생님들을 위해 정토회에서는 작은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님의 책 ‘행복’을 스님이 직접 사인해서 건넸습니다. 



정토회 봉사자들은 애광원 식구들의 저녁식사까지 챙겨주었고, 스님은 내일 오전 강연을 위해 먼 길을 달려가야 해서 양해를 구하고 순천만 습지에서 서둘러 나왔습니다. 



내일(10월 25일, 화요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용인시청 에이스홀에서, 저녁 7시에 세종정부청사 대강당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