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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뉴스를 보면 화가 납니다.”

[20161018 법륜 스님과 행복한 대화(6) 강원도 원주 백운아트홀]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여섯 번째 행복한 대화는 강원도 원주에서 열렸습니다. 강연은 저녁 7시부터였지만 백운아트홀은 이미 준비하는 서포터즈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텅 비었던 객석이 사람들로 채워지고, 저녁 7시가 되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GDP가 과거 50년에 비해 300배 늘었는데,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왜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요? 경제 성장만으로는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 주제는 주로 ‘개인의 마음자세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고, 청년들의 희망을 만들고, 남북을 평화롭게 만드는 사회적 개혁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첫 질문자는 직장에서 위험한 부서로 배치된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스님이 질문을 듣고 ‘요즘 젊은이들의 고충입니다.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자 청중들은 따뜻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따뜻한 박수를 시작으로 현장에서 여섯 분, 영상으로 한 분, 총 일곱 분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 중 뉴스를 보면 화가 난다는 질문과 이어진 대화를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날 때가 있으시죠? 이럴 땐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매일 행복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행복은커녕 짜증나고 화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질문자의 신체 구조가 조금 이상한가 봐요. 뉴스를 보는데 왜 짜증이 나요?”(청중 웃음)

“각종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요.”

“그럼 ‘아, 세상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구나.’하면 되지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그런 사람도 그냥 그 모습과 입장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지,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 하면서 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느 선에서 제 입장을 정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자가 ‘저런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사람, 저런 나쁜 놈’이렇게 화내면서 tv를 때려버리면 질문자 TV만 부서지잖아요. (청중 웃음) 그렇게 하는 것이 故 백남기 농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됩니까? 

또 반대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그렇구나, 저 사람들도 다 살려고 그러겠지, 세상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 아니겠어’라고 방관하면 어느 순간 질문자가 백남기 농민과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어요. 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死因)이 물 대포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이 나면 그것을 지시한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책임이 있는 쪽에서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렵겠지요. 그런데 그런 사건을 대할 때 그들의 입장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나요?”

“사실대로 이해해야지요. 이 경우에 사실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故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인(死因)이 물대포라는 결론이 나면 그것을 지시한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권력자라면, 마치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이용해서 처벌을 피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변명을 해서 처벌을 피하려고 하듯이, 권력을 이용해서 처벌을 안 받으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결국 사인이 물대포라는 결론을 내지 않으려 하는구나’라고 이해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질문자가 화날 일도 없고 TV를 때려 부술 일도 없어져요.

여기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열 받는다고 TV를 부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사실대로 이해를 하기만 해서는 문제 해결이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에요. TV를 부수면 내 재산만 손실을 보고, 열 받아 하면 내 건강만 해치고,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내 처지가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 가족 중에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건 나랑은 관계가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20년이 지나서 자기가 사고 피해자 가족이 될 줄은 몰랐다는 고백을 하신 분이 계셨대요.

저도 어릴 때 경찰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건장한 장정들이 찾아오더니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제 양쪽에 딱 붙어서 어느 건물의 지하실로 끌고 가더니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면서 두들겨 패고 물고문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나만 착하게 살면 경찰서 갈 일이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고문을 당했거나 처벌을 받았다고 하면 ‘그래도 뭔가 죄가 있으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겠지,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과학 책을 읽거나 친구들에게 물들어서 사회 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에요. 사회과학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대학이 아닌 절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그런 친구들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일을 직접 당해보면서 ‘우리 사회에 고문기관이 있는 한 언젠가 나도 그곳에 끌려갈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어요. ‘나만 안 가면 되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고문기관 자체가 없는 것이 우리 모두가 고문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는 길이에요. 이것이 제가 고문을 반대하고 고문기관 철폐를 찬성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이해하게 되고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어요. 지장보살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 중생은 모두 극락에 가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나쁜 짓을 많이 하고도 극락에 가기를 원해요. 그런데 지장보살님은 늘 선행을 하고도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지옥에 가서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를 원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지옥에 한 중생이라도 남아있는 한 나는 부처를 이루지 않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우셨어요. 그 원(願)을 다시 이해해보면 ‘성불을 하더라도 마지막 한 중생까지 모두 구한 다음에 할 것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지옥에 남아있다면 나의 소원인 성불의 길을 가기에 앞서 그 중생부터 먼저 구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고문을 경험하면서 지장보살님이 중생 구제를 하겠다고 세우신 원(願)은 이러한 지옥을 없애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만약 지옥이 없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옥에 갈 일은 없을 거잖아요. 그러니 지옥은 그대로 두고 ‘나만 잘해서 천당 가면 된다’가 아니라 지옥을 없애버리면 그 누구도 지옥에 갈 일이 없어지잖아요. 

우리는 죄를 짓고도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죄를 짓지 않고도 중생 구제를 위해 지옥에 가겠다고 원(願)을 세우는 모습이 바로 지장보살님과 중생의 차이점입니다. 그 분이 그렇게 지옥에 가서 모두를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우시는 것은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만 아니면 된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 처한 입장이 언젠가 내 처지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자타(自他)를 일체로 보는 마음에서 그러한 사상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저도 지장보살님에 대해 배울 때 그 분이 훌륭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경험적으로는 알 수 없었는데, 고문을 당하면서 지장보살님이 세우신 원(願)에 대해서도 깊은 체험적 이해가 생겼어요.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게 되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 우선 내가 화는 나지 않습니다. 화가 나지 않는 것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령 어린 아이가 가게 옆을 지나다가 너무 먹고 싶어서 빵을 훔쳤다거나, 자전거 가게 옆을 지나가다 자전거를 너무 타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훔쳤다거나, 청소년이 오토바이가 너무 타보고 싶어서 오토바이를 훔쳐서 탔다면 어린 아이나 학생의 입장에서 그 상황이 이해는 되지만 잘못된 행동이잖아요. 그럴 때 ‘아이고 얼마나 타고 싶어서 그랬을까’하고 내버려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심정이 이해되지만 잘못은 잘못이라고 깨우쳐주어야 합니까?”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그래요. 그러니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되, 현재 하는 행동이 옳지 않다면 다시는 그 옳지 않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각자 다를 수 있어요. 작게는 댓글을 달거나, 관련된 글을 써서 알리거나, 관련된 모임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 등 각자가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해야지, 화를 내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면 댓글을 달 때에도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욕설을 하게 되고 하고자 하는 말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현장에 나가서도 화를 내면 돌멩이를 들거나 나무토막을 들어서 싸우게 돼요. 그렇게 싸워서 전경들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해도, 결국 피해를 입는 전경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그 전경 속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의 아들이 있을까요? 재벌의 아들이 있을까요? 전경들도 모두 우리 같은 서민들의 아들이에요. 화를 내고 싸워봐야 결국은 내 형제를 때리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것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화를 내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화를 내는 것은 단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심리 현상이지 문제 해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분이 살아온 환경과 처지를 생각하면 그 이유를 헤아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분도 자기 나름대로는 잘  한다고 하는 거예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일부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민들이 불만이 생기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만을 표하는 국민들을 보면 그 분은 또 그 분대로 많이 억울할 거예요. 

그 분은 결혼도 하지 않고, 국가와 결혼했다 생각하고 온 힘을 기울여서 나라의 발전을 추구하고 국민의 행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들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정치인들도 협조해 주지 않는다고 그 분 나름대로 불만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그 분의 입장이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마치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훔쳤을 때 그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깨우쳐주어야 하듯이, 그 분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인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에, 이런 방식을 유지하면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불만은 높아지고 고통은 더 커질 것이기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화를 내는 것이 알려주는 것이고 화를 내지 않으면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의 법은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라는 것이지, 상대방의 행동이 온당하다는 말씀이 아니에요. 상대방의 처지를 알면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기면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돼요. 그러니 화가 아닌 자비심으로, ‘저렇게 하면 저 분에게 나쁘겠구나’하는 자비심으로 상대에게 알려주라는 겁니다.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하면 불행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불행한 대통령이 되면 그 분 입장에서 안 좋잖아요. 그러니 그 분을 위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해요. 여러분이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개발을 할 때 막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대통령이 퇴임 후에 지금처럼 욕을 안 먹어도 되잖아요.

분노에 의해서 행동할 수도 있고 자비심으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중생은 분노에 의한 행동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노가 아닌 자비심으로 행동할 시대입니다. 방치하거나 그렇다고 분노에 의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 자비심에 기초해서 개선할 부분을 개선해 나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스님은 그게 항상 되나요?”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저도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목표를 정해두고 노력을 해야지요.”

“감사합니다.”(청중박수)

뉴스를 보면서 화가 날 때, 이 질문과 답변을 떠올리면 좋겠네요.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의 문제이기도 하고, 너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문제가 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행복한 대화는 안동입니다. 그럼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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