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미 서부지구 해외 정토행자 대회 이틀째 날입니다. 밤낮 기온차가 심한 사막기후라 다들 지난밤, 단단히 보온을 하고 자서인지 쌀쌀한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5시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나니 공양팀에서 따뜻한 호박죽과 사과를 아침 공양으로 준비해 주었습니다. 부드러운 단호박 죽으로 속을 든든히 한 대중들은 각자 사용한 공간 청소를 마치고 삼삼오오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엘에이 쿠야마밸리 수련원 앞마당에서 담소 중인 행자들▲ 엘에이 쿠야마밸리 수련원 앞마당에서 담소 중인 행자들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사막의 풍경과 서서히 사라져 가는 별빛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황량한 사막 속에도 드문드문 자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정토를 일구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고 굳건히 뿌리 내려가고 있는 우리 정토행자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에이 수련원 앞마당 대추나무▲ 엘에이 수련원 앞마당 대추나무

7시 30분, 오늘의 첫 일정, 북미 서부지구 세 개 법당의 사회활동과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 법당 운영에 대한 사례발표를 시작하였습니다. 발표를 다 듣고 6개 조로 나누어 앞서 들은 세 가지 주제에 대한 각 법당의 어려움과 그 해결책을 함께 토론하는 모둠활동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둠활동 후에는 선주 법사님의 불교대학 개편안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배운 강의를 바로 그 주 생활에 적용해서 마치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듯 일상 생활 속에서 수행을 체험해간다는 개편안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덧 점심 공양시간입니다. 어제 만났으나 마치 오랜 친구인 듯 식사 후 자유시간에는 도반들의 담소와 웃음소리로 수련원은 어느새 동네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오후 활동이 시작되자 화기애애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진지하고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더 공유하려는 열정 가득한 정토행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오전에 있었던 모둠별 토론 결과, 불교대학 개편안에 대한 법당 별 나누기, 그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로 인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과 발표가 끝나갈 무렵,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스님이 등장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행자들과 함께 등산할 곳을 미리 답사해 두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이 건기라 대중이 함께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판단되어, 오늘 아침 다시 등산을 대체할 만한 산책로를 답사하러 나섰다고 합니다. 그 길이 우여곡절 끝에 3시간이나 걸려 부득이하게 모둠 토론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며 미안해 했습니다.

단체 사진 촬영을 위해 자리 배치를 미리 살피는 스님▲ 단체 사진 촬영을 위해 자리 배치를 미리 살피는 스님

작은 부분까지도 직접 나서 챙기며 먼저 행하는 스승님의 모습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모둠별 발표 시간이 끝나고, 스님은 대다수의 해외 법당들이 제기한 인원수가 적다는 문제에 대해 관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정리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강연이나 길거리 홍보, 유명인 홍보로 사람이 많이 와서 정회원이 될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법이 정말 귀한 것임을 알아야 정회원이 될 수 있어요. 불법을 만나 보디사트바가 되는 것은 혁명의 소식이며 천지개벽 하는 일과 같습니다.

특히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수행으로 전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예요. 그래거 불교대학의 담당이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담당자의 말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담당자는 부처님의 분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하나는 부족하지만 각자가 하는 일은 부처님이 하는 일이 되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탁은 절에선 성스러운 도구이지만 정토회에선 누구나 칠 수 있는 악기인 것처럼 수행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수행자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이며 수행자가 머무는 곳이 절이며, 여기서 청정한 마음이란 슬프거나 괴롭지 않고 속박받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서 수행자의 태도에 대해 말하며 수행자는 편안하고 검소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정토회 활동이 너무 친목을 중심으로 가게 되면 처음에는 좋은데 시간이 경과하면 오래 지속될 수 없으니 반드시 수행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보람을 느끼고 기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봉사일감 배분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스님의 정리 말씀에 이어 정토행자들의 자율적인 3분 스피치가 이어졌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꺼려하는 업식을 이겨보려 나온 분부터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수행담까지 각자 다른 상황이지만 불법을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편안해진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법문이었습니다.

이어 활동가들의 활동에 관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법당을 수행하고 정진하는 분위기로 바꿀 수 있을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법당에 기도를 꾸준히 하는 천일결사자가 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기도는 스스로 발심이 되어야 정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당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108배를 매일 하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법당에서 수행법회 전 아침시간에 1년 정도 천일결사 기도를 같이 해봤는데, 그로 인해 기도에 관심이 있는 분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 개인기도 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우리 법당이 함께 108배 정진을 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108배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면 어쩌나 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정토회는 기도 정진하는 것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질문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겁니다. 질문자가 대중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본인의 마음속에 망설이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본인이 싫은 것을 대중 핑계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회원들에게 마치 108배가 수행인 것처럼 얘기해서도 안되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개인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토회에서는 무조건 108배를 한다는 원칙을 정해야 그 모든 저항들이 없어집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절에 왔을 때 '삼귀의 하는 것을 싫어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국경일에 국기에 대한 경례 하듯이 절에 왔을 때는 이렇게 하는 거다. 문화 체험하듯이 이곳에서는 이렇게 한다' 하고 당연히 자연스레 말해야 합니다. 제가 교회에 갔을 때 교회 행사에 당연히 참여하는 것처럼, 성당으로 강연 갔을 때 미사 드리고 있으면 당연히 그 미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처럼, 불교 의례를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남들을 배려한다고 그런 방식의 고려를 합니까? 그런 식으로 고려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안 해야지요.

물론 기획 법회에서는 삼귀의 의식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토회 법회 이상이면 무조건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불편해서 서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귀의를 해야 합니다. 하라고 강요해도 안되지만, 그걸 배려한다고 우리가 불교의식을 안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하는 겁니다. 싫다 하면 그 사람은 안 해도 좋다고 알려주면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배려해서 의식을 안 한다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얘기는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중심을 잡고 나가야 수렴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중심이 흔들립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려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면, 꼭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얘기해야 합니다. 내가 이걸 해서 당신한테 도움이 되려고 한다며 따지려 들거나 상대를 설득하려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반복해서 얘기를 해도 안되면 그냥 하면 됩니다. 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저항이 컸습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일요일에 시험도 치르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회 전체가 그 사람들에 맞춰서 일정이 정해지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워낙 저항이 거세다 보니 다 맞춰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중심을 잡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질서가 잡힙니다. 이것은 어떤 것을 고집하고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고집하면 융통성이 없어지니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되 그때그때 몇 가지는 열어놓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 기도하니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 하는 것은 질문자의 욕심입니다. 그 사람들 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아침에 기도하면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매일 아침 기도를 했는데 일 년을 해도 사람들이 안 오니 이제 아침 기도 안 하잖아요. 이게 잘못된 겁니다.

사람들은 그냥 법회에 왔다가 안 왔다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위해 법회를 열어준다고 생각하니까, 법회 날인데 아무도 안 오면 법회를 안 해버리잖아요. 그 사람이 오든 말든 난 매일 법문을 들어야 하니까 혼자 영상 틀고 들으면 되고, 사람들이 오면 같이 들으면 돼요.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관점을 가지고 해야 해요. 자꾸 남을 위해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내가 좋아서 기도하는 거예요. ‘108배를 왜 합니까?’ 물으면 ‘108배를 하니 건강에 좋습니다, 108배 해보니 확실히 마음이 숙여졌습니다. 그래서 하고 있는데 당신도 했으면 좋겠네요’ 하며 권유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안 하는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어요. 그것은 자유의 영역에 속하니까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스님인 저에게도 교회에 다니라고 권합니다. 그처럼 우리도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불교 공부 해보라 권할 수 있어요. 불교를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공부해 보라고 하는 거예요.

‘당신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 와서 공부해 보세요. 믿음은 믿음대로 가지더라도, 행복해지는 공부를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친구 간에 얘기할 수는 있지만 강요해선 안돼요. 하지만 여러분은 '지레 괜히 얘기했다가 의리 상하면 어쩌나' 이런 염려를 해요. 이것은 법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래요. 여러분이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면 확실히 확신이 생기죠. 깨달음의 장을 권할 때 눈치 봅니까? 안 보잖아요. 그건 본인이 체험을 하고 나니 확신이 생겨서 부모든 형제든 그 사람이 누구든 깨달음의 장을 권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관점을 그렇게 잡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당당해야 합니다. 자꾸 타협을 해서 감언이설로 데려와야겠다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도 없으면 혼자 하면 됩니다. 그리고 얘기할 때도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힘이 실립니다. 이것은 강요와는 다릅니다.

친구 간에 얘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불교대학 몇 명 모집해야겠다' 이런 생각에서가 아니라 정말 친구를 위해서 ‘깨달음의 장에 한번 다녀오세요. 부부간의 갈등이나 회사 문제가 있으면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면 훨씬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내 권유로 인해 친구가 다녀왔다면 그때 다시 '깨달음의 장은 응급치료에 속하니 장기적으로 치유하려면 불교대학 다니면서 공부 한번 해보세요' 하며 권하면 됩니다.

기독교를 믿고 불교는 믿고는 졸업한 뒤에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죠. 불교를 믿으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먼저 해보고 스스로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관점을 그렇게 갖고 한번 해 보세요.”

질문자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가볍고 기쁘다" 며 "지은 인연의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이 상황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 했습니다. "몸에 배어있던 성과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성과를 올리는데만 치중했었는데, 수행자로서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는 스님의 지적에 앞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다시 고민해 보겠다" 고 답했습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대중들 모두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바르게 세우는 바른 지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맛과 영양 만점의 검은 콩국수로 저녁 공양을 마치고 추석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는 크고 밝은 달을 등불 삼아 모두 강을 따라 산책에 나섰습니다.

70여 명의 행자들이 강가에 둥글게 모여 앉아 수련원에서 마련해준 다과를 함께 하며 노래도 부르고 담소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맑게 반짝입니다.

“우리는 법을 전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조영미, 김보경, 김소희, 조은영, 박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