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 한국전쟁 6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작년 겨울, 한반도에 전쟁만은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 세계 정토행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집회를 연달아 가졌습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와 실종자들의 즉각적인 송환과, 전쟁포로와 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에 합의했습니다. 그 후속작업으로 미국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남겨진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니 참으로 마음이 뿌듯합니다.

스님은 오전 8시, 스님의 오랜 친구이자 전 6자 회담 미국 측 대표인 조셉 디트라니 대사님을 만나기 위해 신라호텔로 출발하였습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2005년 북미 간에 이루어졌던 ‘9.19 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해 실무 팀을 이끌었는데, 이때 ‘9.19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스님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지난주 한국의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또 이번 주에 있을 ‘Global Korea Forum’에 참석하러 오신 김에 오늘 스님과 미팅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먼저 도착하여 호텔 로비에서 스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만난 이래 약 3개월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스님과 대사님은 한국에서의 재회를 기뻐하며 인사를 나눈 후 두 시간을 움직이시지도 않으시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먼저 스님께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이 풀려가고 있는데 아주 뿌듯하시겠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라며 축하해주었습니다. 20여 년 간 스님께서 북한 인도적 지원, 북한 인권 문제,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북핵문제를 포함하여 북미 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국무부, 의회, 백악관, 학계, 싱크탱크, 시민단체 등 워싱턴 조야를 찾아다니며 미팅과 강연, 세미나를 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스님께 앞으로 미국이 비핵화 관련 논의를 포함하여 북한과의 협상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은 북한이 응할 수 있을만한 다섯 가지 요구 조건 및 미국이 응할 수 있을만한 몇 가지 요구조건을 들어주고 그 이상 북쪽을 압박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북미 간에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묻자 ‘전쟁밖에 없지만,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면서 꼭 협상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얘기하였습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협상 시에 어떤 걸 유의하면서 해야 하는지 물었고 스님은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해줄 필요는 없지만, 안보가 선결되어야 경제발전도 있으니 상황이 안정된 후 투자를 받으면 경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고 하면서 안보가 선결되어야 함을 다시 강조하였습니다.

대사님께서 한국 사찰을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스님은 근처에 있는 봉은사로 가서 한국사찰을 안내해주었습니다. 명진스님께서 주지로 임명될 때 방문한 후 11년 만이었습니다. 스님은 대사님께 지난 600년간 불교가 국가로부터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서울 도심에는 큰절이 없고,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봉은사도 지금은 도심 가운데 있지만, 옛날에는 도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로 남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봉은사 안내를 하는 중, 절을 찾은 많은 분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봉은사 신도회 임원들이 스님이 봉은사를 찾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께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사무실로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사님은 워싱턴 디씨에서 한반도 및 북한문제만으로만 스님을 만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만나니 스님이 이렇게 유명하고 인기 많은 줄 몰랐다고 하면서 웃으셨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지난 6월 15일 조계사에서 한국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 통역 강연과 스님에 대한 기사가 코리아타임즈에 전면으로 나온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 강연에 대해서도 질문하기도 하고, 유튜브 영어채널로 스님 강연을 들어봐야겠다고 얘기하기도 하여 함께 웃기도 하였습니다.


지장전을 지나는데 마침 49재 천도재를 하고 있어 대사님께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스님은 49재 천도재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백중절이 다가와 사찰 곳곳에 달려있는 백중 흰색 영가등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습니다.

대사님께서 지난 주말에 미국에 있는 처남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슬펐는데 지장전에 들어가서 처남(매제)의 명복을 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봉은사 지장전에 대사님과 함께 들어가서 삼배를 하고, 잠시 함께 명상을 하였습니다.

봉은사 신도회에서 스님께 최근에 오픈한 카페에서 차와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하였지만 다른 일정이 있다고 정중히 사양을 하고, 봉은사 곳곳을 둘러보시고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대사님은 이동 중에도 스님께 끊임없이 질문하였습니다. 한국의 종교 분포 그리고 젊은이들이 종교를 안 가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기도 하였습니다. 또 대사님이 ‘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하자 스님은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미국을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미국은 다른 문화를 배울 필요를 잘 못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대사님의 솔직한 질문과 스님의 해석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화재단에 도착해서 대사님께 평화재단, 좋은벗들, JTS 활동 등을 설명하니 스님은 정말 훌륭한 팀을 이루고 있다며 놀라워하였습니다. 특히 북한 인권을 비롯한 국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벗들을 궁금해하셨습니다. 오늘의 북한 소식을 만든 이새롭 좋은벗들 사무국장을 소개하자, 대사님은 다시 한번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재단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두 분은 동북아시아의 지도를 펴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 아래로 들어갈 경우 중국의 영향력이 동북아에 너무 커지게 된다. 그러면 미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 평화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누고, 대사님은 9월에 스님이 워싱턴 디씨를 방문할 경우 국방부 전략팀들과의 미팅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대사님은 평화재단에서 마련한 정갈한 음식을 보시고 스님의 환대에 감사하다고 인사하였습니다. 스님은 대사님이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사찰을 구경시켜주시고 싶다고 하면서 꼭 같이 시간을 내어 방문하자고 하였습니다.

대사님을 호텔에 모셔다 드리니 3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잇몸이 아파 미리 예약되어 있는 치과로 가서 치아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후 스님은 재단으로 돌아와 국제국 팀원들과 함께 지난 INEB 행사와 조계사 외국인 대상 영어 통역 강연에 대한 회의 및 평가의 시간을 가지고, 그동안 수고한 국제국 팀원들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한반도 평화와 일본, 한일 시민평화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랫동안 꽁꽁 얼어있었던 남북, 북미 관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풀리게 되면, 그다음 단계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이야기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평화재단의 중요한 사업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를 위해 한일 관계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한 일을 하는 분들을 모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어보고자 조촐한 모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참석한 분들의 자기소개와 소감을 나눈 후 스님께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미래와 일본’이라는 주제로 기조 발언을 하였습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방향으로 첫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러한 희망적인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뭔가 될 듯하다가 다시 악화되고, 조금 나아질 듯하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경험이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도 우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이번에도 안 될 거야’라고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이번에도 다시 안 좋은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라고 해서 이번에도 안 될 거라고 체념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없거나 아주 더디게 찾아올 것입니다. 비록 과거에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추진해야 역사의 발전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의 정세, 그중 특히 동아시아의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패권 국가의 영향으로 분단이 되었고, 지난 70년 동안 그로 인한 갈등이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세계 대부분의 냉전구도는 해체되었지만 유일하게 한반도만 아직 대립이 종식되지 않고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어쩌보면 세계사적으로 청산되지 않은 적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소련 붕괴 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1국 체제가 유지되어 오다가 최근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중 패권 경쟁시대로 돌입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미, 소 냉전시대에서 미중 패권 경쟁 시대로의 전환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봉쇄 전략을 펴고 있고, 중국은 그 장벽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충돌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요.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타이완, 센가쿠 열도 그리고 남사군도, 서사군도 등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만약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가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결국 러시아와 북한은 중국 쪽으로, 일본과 남한은 미국 쪽으로 편재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냉전구도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냉전구도에 남한과 북한이 다시 편재되는 것이에요.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저희들은 14년 전 이러한 우려를 예견하고 한반도가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그들의 하위 변수로 각기 편재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보자는 취지로 평화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저희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많이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우리가 14년 전에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잘 예측했지만 정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어 하는 사이에 계속 끌려다닌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도 여러 차례 토론에 참여하여 이러한 신 냉전구도가 과연 미국의 장기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 오전에도 방한 중인 조셉 디트라니(Joseph DeTrani) 전 6자 회담 미국 특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도 ‘우리가 과거에 우려한 대로 정세가 흘러왔는데, 우리가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 모르겠다’는 농담을 하셔서 같이 웃었습니다.

저는 세계와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과거와 같이 그저 수동적으로 편재되기보다 우리에게 불리한 부분은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좋겠다고 늘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과거처럼 남북이 대결하는 양상으로 계속 전개된다면 이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 협력을 한다면 미·중 사이에서 한반도가 동아시아 분쟁의 중심 지대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중심 지대가 되는 반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핵심은 바로 남북관계의 개선에 있고, 남북관계 개선의 주도적인 역할은 남한이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입장을 갖고 정부를 설득하는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한반도가 미·중의 패권경쟁에서 하위 변수로 전락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뿐 독자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정세를 보는 시각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자주적인 입장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전락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남북관계가 그저 잘 풀리기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또 너무 단기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과거 남북의 냉전구도를 해체시키고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단계까지는 나아갈 것 같습니다. 즉,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서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까지는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나 경직된 북·미 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벌어진 세계사적인 흐름을 봐도 다소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문제를 청산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형성해나갈 것인가를 떠올려보면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산적해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가진 거대한 힘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로 합해진다고 해도 두 나라의 패권 경쟁 속에서 균형 잡는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선진국이긴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이 가진 힘과 비교해보면 규모 면에서 둘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반면, 한반도와 일본이 가진 지정학적 위치, 동아시아 신질서에서의 이해관계, 문화적 동질성 등을 고려해 보면 만약 한반도와 일본이 서로 힘을 합한다면, 미·중의 경재 구도에서 자기 입지를 갖고 양쪽 모두와 협력할 수 있는 위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형식은 ‘동아시아의 다자안보체제’를 차용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되고 그 주변의 협력적인 나라들에 의해 새로운 질서가 잡히게 될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실질적인 다자안보체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된 후 일본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여전히 지난 역사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우리와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의 협력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래 신질서 속에서의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가 수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태동하는 과정을 봐도 그렇습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과거의 문제에만 집착했다면 하나의 연합을 이루지 못했을 텐데, 유럽연합이 미래에 가져올 커다란 이익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에 연합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사람들도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일본이 한국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과거사 반성을 한다면, 장기적으로 일본의 국가 이익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반성은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반성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반성은 첫째, 남북 간 평화가 유지되는데 일본이 기여하는 것, 둘째, 남북이 통일하는데 일본이 기여하는 것, 셋째, 북한을 개발하는데 일본이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번영에 일본이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는 길이고,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도 늘 과거의 적대감만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자주적인 관점을 갖되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국가의 미래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웃나라로 있으니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서양과 비교해보면 둘 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에 속해요. 앞으로 일어날 문명의 충돌 관점에서 봐도 한국과 일본은 같은 동북아 문명 계열에 속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일본에 대해 과거사로 인한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로 접근하지 말고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길게 보면 러시아와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협력이 우선 과제입니다.

남북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면, 민족의 자주성에 결함을 가져오는 주장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전제 위에서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큰 기여를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와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방해 세력이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개발하려면 아무래도 중국의 커다란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는데,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하려면 일본 투자를 이끌어 내어 한일 간의 협력관계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하면 일본과의 관계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현 정권의 태도만 볼 것이 아니라 일본 안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동아시아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칠 필요가 있습니다. 정권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잖아요. 현재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에서 주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오늘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해서 한국, 일본 모두 협력해야 한다는 말씀에, 참가하신 분들도 공감을 표했습니다. 스님의 기조 발언 후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의 의의, 그 이후 20년간의 역사와 한일 시민평화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방법과 과제에 대한 전문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섬세한 해석과 새롭고 창조적인 제안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한-일간 민간차원에서 협력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일본에 대한 애증의 마음에 대해서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사물의 양면성에 대해 설명해주시며, 다시 한번 미래의 이익을 위해 남북관계를 푼 후 일본과 협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일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콤플렉스가 다소 저항적인 모습으로 표출되곤 했어요. 대부분의 나라가 일본을 높이 평가하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일본을 겁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축구를 해도 일본은 이겨야 하고, 뭘 해도 일본만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늘 일본에 대한 부러움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일본에 대한 부러움이 없다 보니 동시에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가령 K-pop을 하는 가수들은 자기 길을 가려고 하지, 일본에 가서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성공하려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잖아요. 한국의 국력이 이만큼 신장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풀 수 있는 준비도 갖추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콤플렉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분단입니다. 남북 분단의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민족적인 고뇌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 민족은 적대시하면서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과 친해지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늘 우리 내면에 생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북관계가 풀리면 우리에게는 일본에 대한 포용이 더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비굴한 동경이나 무조건적인 적대의식이 아닌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면서도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당당해져야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도 쉬운데, 그런 점에서 한국 사람들은 차츰 일본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고 봐집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 문제를 푸는 첫 단추가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그다음 단계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는 모두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일본과의 관계도 남북관계처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양상이 점점 더 심각해져서 이제는 한반도와 일본이 힘을 합해서 균형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늘 미, 일 동맹을 강조해왔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일본도 무조건 미국 편에만 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렇다고 일본이 중국 편에 서기는 더 어렵습니다. 한국은 때에 따라 중국에 조금 숙이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본은 중국에게 절대로 숙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미국 편에 설 수도 없고, 중국 편에 설 수도 없는 일본으로서는 결국 한국과 손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 그렇게 형성되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다만 그런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누군가 물꼬를 트는 역할은 해주어야 합니다. 환경이 형성되어도 누군가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물이 흘러가지 않아요. 북미 관계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정작 그 누구도 물꼬를 트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그 물꼬를 잘 터주니까 대화까지 이루어지게 된 거잖아요.

그렇다고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노력만 한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누군가 결정적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잘해주니까 진척이 있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주변 환경이 그렇게 형성되고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누군가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부터 우선 ‘한일 평화포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어요. 대중들에게 알리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대화를 하면서 한국 내에 이런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넓혀 나갑시다. 또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각자 나름대로 일본과의 교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각자가 하고 있는 활동에 우리가 함께 참여해서 조금 더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와 시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하는 행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우리가 그쪽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는 등 차츰 확산하는 방식으로 우선 출발해 봅시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오늘 모임을 어떻게 더 이어갈지 논의를 했습니다. 이 모임이 한일 간 평화를 만드는 씨앗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 깊이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WFP 관계자를 만나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의논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조태준, sns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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