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문경정토수련원 대강당에서 불교대학 특강수련 즉문즉설 법문을 했습니다. 부산울산, 대구경북, 광주전라지역에서 지난 3월에 입학한 총 436명의 학생이 함께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이미 못 잤다고 소문이 났던데요?(모두 웃음) 이렇게 큰 방에서 자보니까 좋죠? 또 이렇게 많은 사람과 자본 적도 처음이죠? 여러분들 인생의 신기록이에요.(모두 웃음)”

스님은 먼저 특강 수련에 와서 무엇이 가장 불편했는지 물어보시고는 이 불편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문경의 화장실이 불편한 이유는 화장실 때문일까요, 내 습관 때문일까요?

화장실에 갔을 때 불편을 느끼는 것이 화장실 때문이라고 할 때는 불편이 불평이 됩니다. 이 불편이 나의 생활습관 때문에 온다고 볼 때는 불편은 일어나지만 불평은 하지 않게 됩니다.

불편함이 일어났을 때, 불평으로 가는 게 중생이고 그것이 불평으로 가지 않는 게 수행자입니다. 화장실을 저렇게 만들어놓은 이유는 중생 되라고 만든 걸까요, 수행자가 되라고 만든 걸까요?(모두 웃음) 내가 수행자인지 점검하라고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불대특강수련에 와서 법문을 듣고 있는 시간, 300배를 하는 시간만 수행이 아니에요. 화장실에 가서 불편을 느낄 때 ‘이 불편이 화장실로 오는 줄 지금까지 착각을 했는데, 아 이게 내 습관 때문에 오는 거구나’ 하고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알아차려서 불편이 불평으로 가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만히 있으면 사라지는데, 불편이 불평으로 가면 자꾸 증폭이 됩니다.

그러면 약간의 불편이 일어나는 조건에서 마음이 잘 살펴질까요, 아무런 불편이 없는 조건에서 마음이 잘 살펴질까요? 불편이 일어나야 잘 살펴집니다. 즉 연습할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교리만 외우는 게 공부가 아니고 죽기 살기로 절만 하는 게 공부가 아니라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알아차리기’입니다. 불편한 가운데 편안함을 유지한다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건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수행자는 조건의 구애를 덜 받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건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 수행자다움이 잘 드러납니다. 수행을 많이 해서 아들이 서울대를 가는 게 수행이 아닙니다. 이것을 돌이키기라고 합니다. 어디로? 내 마음을 살피는 쪽으로요. 그럴 때 불평, 번뇌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이것 하나만 공부하고 가면 됩니다.”

이어서 불교대학 공부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시간 동안 총 11분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 탄압으로 개인이 희생당하는 것을 불교적으로 어떤 관점으로 봐야하는지, 다슬기와 물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불살생계를 어기는 거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법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병들고 외로운 사람을 도우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대를 다니는 것이 좋지만 한편으로 얽매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할지, 상담사가 직업인데 상대의 말을 들을 때 깨어있기보다 판단을 해버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왜 정토회에는 탱화가 없는지, 도반들이 말하는 ‘놓아라’는 뜻이 무엇인지, 나를 바꾸고 싶지만 절하기가 싫고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질문과 복지, 통일특강 외에 노동, 정치 특강에 대한 요청과, 경전을 한글로 바꾸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 주셨습니다.

그 중 불교대학에서 불살생계를 배우고, 다슬기를 먹는 것에 고민이 생겼다는 질문을 소개해드립니다.

“제가 올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오계(五戒) 중에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배우고 나서 좀 고민이 생겼어요. 제가 시골에 살면서 다슬기를 많이 잡았거든요.(모두 웃음) 그리고 지인들이 오면 물고기 같은 걸 잡아서 매운탕도 많이 끓여주고 그랬는데,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오계를 지키는 공부를 하다보니까 제가 그렇게 하는 게 오계를 어기는 것임을 알고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 중입니다. 그래서 꼭 큰 스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살생(殺生)을 면할까요?”

“그래도 여름에 모기 잡을지, 말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낫네요.”(모두 웃음)

“예, 잡아서 안 된다는 건 제 스스로도 알지만 며칠 전에 지인들이 와서 또 조금 잡았거든요.(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먹지는 않고 그 사람 집에 가서 해먹으라고 줬는데, 다슬기가 간에 좋다면서 자꾸 저한테 ‘여름 방학 때도 가자’고 해서요. 그런 일을 하면 제가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의미가 없고, 또 이 살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이 되어서요, 이렇게 큰스님께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좀 가르쳐주세요.”

“다슬기를 안 잡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안 잡으면 좋지요.”

“지장은 없습니다.”(모두 웃음)

“그럼 안 잡으면 되지요.”

“그런데 가족들이 자꾸 좋다고, 가자고 하니까요.”(모두 웃음)

“그러면 가서 잡아서 주면 되지요.”

“그런데 제가 잡아서 제가 안 먹고 남을 주거나 또 저희 집에 와서 끓여먹자고 하는데 제가 안 된다고 하니까 ‘얘가 여태 잘하다가 불교대학에 가더니 변했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좀 서운하다’고도 하고요. 제가 또 그걸 거절을 못 하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걸 좀 즐겨했습니다.(모두 웃음)”

“예, 그렇다면 즐겨 드세요.”

“그런데 오계를 지키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아서요.”

“첫째, 안 하면 제일 좋아요.”

“예, 그건 저도 아는데 잘 안 됩니다.”

“둘째,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하세요.”

“어쩔 수 없을 때요?”

“예. 그리고 과보를 좀 받으면 돼요.(모두 웃음) 그런데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금 사정이 궁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은 빌렸는데 안 갚는 방법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안 갚는 방법은 없다는 거예요. 돈을 떼먹는 길밖에 없는데 부처님께서 떼먹으라고 가르치시겠어요? 그러니까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되고, 갚는 게 힘들면 다음부터는 안 빌려야 돼요. 그러니까 안 잡는 게 제일 좋아요. 과보가 안 따르니까요. 그런데 잡아서 먹든, 잡아서 남을 주든, 어쨌든 잡았으면 그게 얼마나 과보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과보는 감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어디를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좀 다치거나 자전거에 치여서 다쳤을 때 ‘에이, 재수 없다.’ 그러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나는 다슬기를 100마리나 잡아먹었는데 다리 정도 다친 건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내면 다슬기 먹고 이런 저런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하게 되는 거지요. 다른 사람들은 좀 다쳤다고 울고불고 난리인데, 나는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한다면 옆에서 ‘다쳤는데 뭐가 감사하냐?’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고, 나는 다슬기를 죽이기까지 했는데 내가 다치는 것 정도가 뭐가 문제냐?’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지금부터 안 잡으면 오계를 안 어기는 게 됩니까?”

“지금부터 안 잡으면 지금부터는 과보가 안 따르지만, 옛날에 잡아먹은 것에 대한 과보는 받아야지요.”(모두 박장대소)

“그러면 그 죄를 좀 면제받을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게 욕심이라는 거예요.”

“제 욕심입니까?”

“예.”

“그럼 그 죄를 좀 면제받을 기도도 없네요?”

“기꺼이 받아야 되는 거예요. 앞으로 그런 게 닥치면 ‘나는 언제부터는 한 마리도 안 잡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 하지 마시고 ‘아, 내가 과거에 살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런 과보가 따르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돼요. 그러면 괴롭지가 않아요.”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불교대학에 온 이후부터 새 출발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까?”(모두 웃음)

“옛날에 지은 과보는 어차피 오게 돼있어요. 옛날에 빌린 돈은 어차피 갚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불교대학 좀 다녔다고 ‘옛날에 빚진 것 다 안 갚겠다’고 한다면(모두 웃음) 누가 불교대학을 안 다니겠어요? 다 다니지요.”

“그것이 아니고요, 제가 죄는 지었지만 많이 죽인 고기와 다슬기에 대해서 기도하는 방법이 있나 해서요. 또 죄를 사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요.”

“죄를 사하는 방법은 첫째, 앞으로는 죄를 안 짓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 죄를 받긴 받아야 되는데 조금 감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감하는 방법이라도 알려주세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 돼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나온 방식이 ‘방생(放生)’이에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예.”

“그게 ‘내가 죽인 것보다 더 많이 살려준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면 과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정상참작은 된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이 사람이 죄는 지었지만 반성, 즉 참회를 하고 있고, 또 조사를 해 보니까 이 사람이 좋은 일도 많이 했더라.’ 그러면 판사가 형을 정할 때 정상참작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좀 조정이 될 수는 있어도, 절에 다니거나 교회에 다닌다고 무조건 죄가 다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건 ‘아,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마땅히 과보를 받겠다’고 생각하면 과보가 따라도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대중들) 안 괴로워요.”

“결과는 일어나는데 괴로움은 안 생겨요. 괴로움은 없어요. 그러니까 꼭 좋은 일만 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나쁜 일도 괜찮아요. 나쁜 일을 하고 깊이 반성을 하면 좋은 일만 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다슬기 하나갖고 너무 끙끙대지 말고요, 어쨌든 앞으로는 안 잡는 게 제일 좋아요. 아시겠어요?”

“예.”

“그래도 친척들이 와서 ‘같이 잡자’고 할 때 안 잡아도 되면 적당히 피해가시고, 잡아서 친척들 약으로 주거나 또 만약 본인이 간이 안 좋다면 다슬기라도 먹고 나아야죠. 질문자는 다슬기 안 먹고 그냥 죽을래요? 아니면 먹고 나을래요?”

“먹고 낫고 싶어요.”(모두 웃음)

“예. 잡아먹고 산다면, 그 다슬기 목숨 갖고 내가 살았으니까 그 산 목숨으로 좋은 일 좀 해야 될까요? 아니면 나쁜 짓 해야 될까요?”

“좋은 일을 해야 되지요.”

“예,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예.”

“이왕 고기를 먹었으면, 그것 먹고 힘내어서 남 욕하고, 두드려 패고 그러면 되겠어요?(모두 웃음)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그것 먹고 난 힘은 넘어진 애를 일으켜 세워주고, 아픈 사람 치료해 주고, 이렇게 좋은 일에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빚 진 것도 갚게 되고, 또 그렇게 해서 복도 짓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건, 한쪽으로는 은행융자도 내어 쓰고, 또 한쪽으로는 저축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님, 올 여름에 ‘한 번만 더 가자’고 해서요...”(모두 박장대소)

“스님으로부터 꼭 ‘다슬기 잡아먹어도 된다’는 허가증을 받아가겠다는 거예요?”(모두 박장대소)

“아닙니다.”

“그래요, 그건 너무 하잖아요.(모두 박장대소) 스님은 다슬기 구경도 못하고 죄를 짓는 게 되는 거잖아요. 허가해준 죄 말이에요. 질문자가 잡아먹고 싶으면 조용히 다녀오면 되지, 꼭 나까지 끌어들여야 되겠어요?”(모두 박장대소)

“아니, 스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요, 제 자식들도 다 컸고 그래서 이 기회에 봉사도 좀 하고 싶어요. 여태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남은 시간을 좀 투자할까 싶어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된 건데요.”

“아이고, 좋은 생각이에요.”

“예. 그런데 자꾸만...”

“그 다슬기 때문에 문제네요.(모두 웃음) 그러면 질문자가 다슬기 잡는 죄는 제가 대신 다 짊어질 테니까 한번 잡으세요.(모두 박장대소) 아, 제 빚도 너무 많아서 다 못 갚고 있는데, 질문자 빚까지 제가 다 짊어져야 되다니...”(모두 박장대소)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저녁에 공부하고 나면 발표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제가 지금 다슬기에 사로잡혀있어서 스님께 확인도 해야 되겠고, 또 지인들과 친척들이 갑자기 온다고 하면 ‘오지 말라’는 말도 못하겠고 해서요. ‘여름에 한 번 더 하자’고 하는데 한두 번 더 하고 앞으로는 제가 좋은 일만 하면 괜찮겠습니까?”(모두 웃음)

“예예, 그러고 좋은 일 좀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모두 박장대소)

“여러분들도 질문자 본 좀 받으세요. 배웠으면 저렇게 효과가 좀 있어야지요. 저렇게 효과를 보이니까 제가 죄를 대신 짊어져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호랑이가 우리 어머니를 물어 죽였기 때문에 복수심으로 그 호랑이를 죽이면 그건 살생이 됩니다. 그건 보복이고 응징입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이웃집 할머니를 또 물려고 하는데 살생을 안 해야 되니까 할머니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쓴다면 그건 계율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럼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호랑이를 죽인다면 그건 죄가 안 될까요? 여러분들은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자꾸 물어보는데, 세상에서는 죄가 안 되지만 살생을 했으니까 과보는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과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할머니를 살려야 된다.’ 관점을 잡으셔야 합니다. 이해하셨어요?”

“(대중들) 예.”

“사람을 살린다고 복만 받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려다 내가 손해 볼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손해를 감수하고도 이건 살려야 됩니까? 아니면 내버려 둬야 됩니까?”

“(대중들) 살려야 돼요.”

“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고맙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사람은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사람이니까 건지지 말아야 될까요? 아니면 돈을 좀 물어주게 되더라도 건져야 될까요?(모두 웃음) 돈을 좀 물어주더라도 건져야 됩니다. 이게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질문자는 불교공부를 해서 마음을 내어가지고 그렇게 좋아하던 다슬기도 안 먹고, 그 좋아하던 친척들과의 놀이도 안 하려고 하는데, 과거의 습관 때문에, 또 친척들을 위해서 다슬기를 한 번만 더 잡아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고민에 빠졌잖아요? 부처님 법을 안 들었다면 이런 고민이 생겼겠어요, 안 생겼겠어요?”

“(대중들) 안 생겼어요.”

“예, 질문자는 공부를 잘 하려다 보니까 그런 고민도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도 과보는 스님이 대신 짊어져 주겠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학생과 법을 가르쳐주시되 과보는 내가 대신 받아주겠다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이 재미있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한 가지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을 다니기 힘들기도 하고 바쁜 것도 있고 아프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짤 때 저희 오랜 시행착오와 경험을 가지고 짰습니다. 불교가 뭐냐, 부처님은 어떤 분이냐,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는 무엇이냐, 그런데 역사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변했느냐. 이걸 다 공부하려면 10년 공부해도 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굉장히 축약해서 만든 것이 정토불교대학이에요.

이걸 처음 만든 발상은 제가 감옥에 있을 때 같은 방에 있던 사람이 불교를 알려달라고 해서, 책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요점 정리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 그 사람에게 가르쳐준 과정을 대학생들을 가르치려고 중요한 내용만 뽑아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치만 알아서 안 되고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교대학 과정 안에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라고 하고 봉사도 하고 나누기도 하라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곳에서 안 하는 것을 하니까 좀 귀찮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요대로 한 번 해보세요.

어쨌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졸업하고 그만두세요. 불교 신자 되라는 것도 아니고, 1년간 해보고 좋으면 다음 단계를 해보고, 별로면 그만 둬도 되요. 상품으로 치면 한번 써봐야지, 디자인 나쁘다고 써보지도 않고 갔다 버리면 안돼요. 그러니까 꼭 1년 다니고 그만두세요.”

“네!”

“감사합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꼭 졸업할 것을 당부하며 법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어서 대전에서 열리는 행복캠프로 출발하기 전 짬을 내어 INEB 스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 특강 수련에 참가한 동남아 스님들은 불교대학과정에 대해 물었고, 스님은 불교대학, 경전반, 행복학교, 백일출가, 행자대학원 등 정토회의 교육과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스님들은 큰 관심을 보이며 미얀마에서도 유학을 와 불교대학을 다닐 수 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하였습니다. 또 마하야나(대승불교)는 한국, 중국, 일본에 널리 전법이 되고, 테라밧다(소승불교)는 동남아시아에만 국한되어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은 핵심적인 내용을 답하시고는 출발 시간이 되어 대전으로 떠났습니다.

대전 서구 갈마로 KT 인재개발원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중부권 행복캠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문경을 출발하여 쉼없이 달려 오후 1시부터 행복캠프 프로그램에 결합했습니다.

연수원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하고 편안해졌습니다. 오늘은 광주 목포 순천 전주 무안에서부터 대전 세종 청주 천안 제천 충주까지 총 115명의 행복학교 학생이 모였습니다.

스님이 오시기 전 오전에는 행복학교 참가자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혜경이의 톡투유가 진행되었습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퀴즈로 시작해 행복학교를 하기 전과 후의 변화에 대한 참가자들의 사례발표를 했습니다. 화를 알아 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분, 환경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분 등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정경희님은 ‘나에게 행복학교 참가자들은 무디고 단단한 것들을 녹여서 쓸모있는 것들로 만들어주는 대장장이다’ 라는 말로 행복학교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나누는 감동의 시간을 가진 후 오후 1시부터는 유재숙님이 진행하는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학교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규모로 각 지역에서 영상으로 법륜스님의 강의를 공부해 왔는데 오늘은 스님과 직접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스님을 부르자 객석 뒤에서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한줄쓰기, 주제강연, 나누기, 행복연습, 행복톡까지 함께 진행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제강의는 첫째,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자기 집만 생각하고 처갓집은 가지도 않아서 나도 시댁에 안간지 15년이 되었다. 아이들도 크고 죄책감도 들어서 다시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둘째, “6월 12일 북미 회담이 잘 성사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제 강의를 듣기 전 한줄 쓰기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에 대해 참가자들은 ‘두근 두근 설렐 것이다’, ‘긴장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등을 적기도 했습니다.

행복학교 생방송이 끝나고 본격적인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주식으로 자신의 돈 5천만원을 잃었는데 원망하는 마음이 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여성, 이혼을 생각중인데 아이들을 누가 키워야 할지가 고민이라는 30대 여성, 제천 강연회때 스님 농장에서 봉사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앞으로 한 달에 2일은 그 곳에서 봉사하겠으니 방법을 알려달라는 남성분, 시어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마음에 항상 분노가 있다는 중년의 여성분, 7년 전 교제를 하다 헤어진 남자와 띄엄띄엄 연락을 하다가 최근에 다시 만났고 결혼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40세 여성분, 최근에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본인과 남편이 자꾸만 악몽을 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여성분 등 스님은 총 6명의 질문을 듣고 명쾌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마무리 말씀에서 스님은 “환경이 달라지면 습관으로 인해 불편하다, 이 불편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면 불편이 불평이 되지만 나로부터 오는 것을 알면 불평하지 않고 개선할 점을 찾게 된다”며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난 후 개근한 참가자들에게 스님이 직접 장미꽃을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가자들은 매일 영상으로만 보던 스님을 본 것만 해도 행복한데 꽃 선물까지 받으니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이어서 로비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캠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여서 참 좋았습니다.

행복캠프가 끝나고 스님은 INEB 스님들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다시 문경으로 돌아왔습니다.

INEB 스님들은 문경대중들과 남방식으로 저녁예불을 드린 후 명상원에 둘러앉았습니다. 스님은 오늘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묻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고, 태국의 스님께서 어제 이야기를 나눴던 미얀마의 로힝야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미얀마 스님들은 미얀마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고, 스님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 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미얀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미얀마에 살던 한 70만 명의 사람들이 쫓겨나서 지금 방글라데시로 와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현장을 직접 가서 보면 그들은 난민이 분명하지요. ‘난민’이 뭡니까? 어떤 피해를 입은 사람들, 정치적 탄압을 받은 사람들이 그 탄압을 피해서 다른 나라로 쫓겨 온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은 국제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 로힝야 난민 문제로 인해 불교가 소수인 나라에서 불교도들은 무슬림들로부터 비판이나 공격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는 모두 불교가 소수인 나라들이지요. 방글라데시에도 100만 명의 불교도가 있었습니다만, 이들은 30년 전에 방글라데시 무슬림들로부터 탄압을 받아서 그 중 30만 명이 인도로 망명을 했습니다. 그곳이 주로 로힝야 난민이 있는 콕스 바자르(Cox's Bazar)가 속한 치카공 지역인데, 그곳에 주로 불교도들이 삽니다. 그때 인도로 넘어온 난민들 중에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도국적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아루나찰 프라데스 주에 아직 5만 명이나 있어요.

각 나라별로 다 나름의 사연이야 있겠지만, 일단 로힝야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탄압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불교도에게 가장 큰 위협이 과연 무슬림일까요? 이걸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소비주의, 이것이 불교의 최대 위협입니다.

첫째, 지금 한국이나 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승려들의 부패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은 다 소비주의로 인해서 생긴 것입니다. 두 번째, 산업화와 서구화로 인해서 전통사회가 붕괴 되면서 몰려드는 기독교가 무슬림보다는 더 위협세력입니다. 미얀마 역사 속에서는 이 문제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긴 하겠지만 세계불교의 발전,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 불교를 전해야 되는 우리 입장에서는 로힝야 난민 문제가 큰 장애가 될 겁니다. 불교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소수잖아요. 그런 소수집단인 불교가 다른 소수집단을 탄압한다는 건 모순이잖아요. 그런 이유로 이 문제는 미얀마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불교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해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는 종교가 국가보다 하위인데 비해서 무슬림은 종교가 국가보다 상위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미얀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무슬림의 문제입니다. 그걸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그들의 신앙체계와 믿음이 그런 것이니까요.

700년 전 인도에서 무슬림의 침입으로 인해서 불교가 멸망했기 때문에 불교인들에게는 무슬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극복을 해야 될 일입니다. 중요한 건, 한국,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 이렇게 약간 경제력이 있는 불교국가들이 동남아 지역을 도우면 되는데, 저마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제력 있는 불교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동남아 불교국가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지원하는 일이 적다는 이미지가 있는 거예요.

무슬림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자나라들이 가난한 무슬림들을 지원하고 있고, 크리스천은 유럽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동남아의 불교도들은 지원하는 데가 없으니까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불교, 한국불교, 일본불교’ 이런 식으로 종교보다 국가가 더 앞선 개념이기 때문에 ‘불교의 세계적 연대’ 개념이 적은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JTS(Join Together Society)를 설립할 때 ‘적어도 동남아에 있는 불교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가 같은 불교도로서 그들을 돕는다면 적어도 이들 지역에 서구에 의한 문화파괴가 적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던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여러분 나라의 노동자들의 신앙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JTS도 외국인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센터를 만들어서 그들의 어려움을 돕는 일을 한지 3년 남짓 됐습니다만 그 영향력이 아직 미미합니다. 저도 1년에 2번 정도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몇 백 명을 대상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오전에는 한국사찰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즉문즉설을 진행해서 그들의 고뇌와 어려움을 듣습니다. 그리고 센터에서는 각국의 노동자들을 지원하러 온 태국 스님, 미얀마 스님, 스리랑카 스님들과 교류하며 한국말을 가르치거나 혹시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치료하는 등 여러 가지 일상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을 20년 전부터 해 왔고 그 규모도 아주 큽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도 한국에 와서 여러분들의 나라에서 일하러 한국에 온 노동자들을 지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하오 하이 스님(중국) : “홍콩, 대만, 마카오의 불교계와 연대하는 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과는 협력할 수 있거든요. 아직 중국 불교계와 협력하는 건 힘들지만요.”

“현재 타이완에서는 불교가 가장 큰 종교세력으로서 규모가 크기 때문에 타이완 불교가 현재로서는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에서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은 전부 전통불교가 중심인데, 타이완불교는 현대화되어있지 않습니까. 타이완불교는 본토에서 도망 오면서 종단개념이 무너지고 개인 스님들의 원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현대화가 된 편입니다. 일본불교는 규모는 큰 데 주로 장례를 치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본의 개별 사찰은 굉장히 부유하고 아름다운데 사회성은 결여되어있지요. 일본에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신고를 하고, 자라면 결혼은 교회에서 하고, 죽으면 절에 가서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죽었을 때 제일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절이 제일 돈을 잘 번다’고요.(모두 웃음) 이처럼 아시아의 불교에 사회성과 글로벌리즘이 결여되어있다는 것이 세계불교를 이끄는데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한국이 50년 전에 겪었던 과정을 앞으로 여러분들이 겪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은 굉장히 피폐했습니다. 그때 한국에는 음식과 옷이 제일 부족했는데, 그 음식과 옷을 모두 교회를 통해서 원조 받았습니다. 또 교회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쳐줬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자랐는데, 저도 교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 서양문명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초등학교 때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사회에 살았던 어른들은 교회의 영향을 안 받았지만 아이들은 영향을 받아서 교회를 다녔던 거예요. 또 교회에서는 학교와 병원도 많이 세워서 운영을 했는데, 불교에서 세운 학교 수와 비교하면 100배도 더 차이가 날 정도입니다. 또 고아원이나 양로원도 많이 세워서 운영을 했고, 또 교도소 재소자들이나 군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또 노동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했고요, 농민운동도 지원했고, 또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활발했을 때는 그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호해 준 것도 교회였습니다. 학생들이 구속되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그들의 석방을 위해 후원하고, 또 그 부모들도 지원하고, 특히 여성운동도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감옥에 갔던 청년들, 여성들이 그로부터 30년 후에 대부분 한국사회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국민들 중 불교신자가 30%지만 국회의원 중에 불교신자는 10%도 안 됩니다. 한국은 기독교국가가 아닌데도 정치 리더나 교수,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등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 다수가 기독교인입니다. 대통령도 당연히 기독교인이고요, 대통령 출마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한국전쟁이후 5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 변한 겁니다.

만약 테라밧다에서도 ‘현재 불교가 전체 사회를 지도하고 있다’고 방심한다면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같은 이런 변화를 순식간에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권위주의에 사로잡혀서 방심하면서 산업화와 현대화를 겪으며 30년을 보내면 한국처럼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미얀마, 스리랑카, 이런 나라들도 경제개발이 되어서 돈이 조금 생기면 사찰도 부유해질 것이고, 그러면 승려들의 부패가 급격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태국은 이미 겪고 있는 것 같던데요.”

미하오 하이 스님(중국) :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특히 앞으로는 여성들도 고등교육을 받게 될 텐데, 불교를 전하는데 있어서 여성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 이상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여성에 대한 테라밧다의 전통을 조금 수정해서 ‘불교는 남녀차별이 없는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학생들의 지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신경 써야 합니다. 또 공단이 조성되어서 도시로 노동자들이 몰려올 때 그 국내이주민들에 대한 지도도 잘해야 합니다. 또 환자나 재소자, 고아나 노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서비스도 확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 사회가 변할 것을 대비해서 미래에 제기될 문제, 예를 들어 평화나 환경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도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불교는 환경문제에 가장 앞장설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한국사회가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그 발전과정에서 어떻게 전통을 잃어버렸는지, 또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왜 사람들의 고뇌가 많아진 건지, 이런 부작용도 함께 봐야 된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그동안 급성장하던 한국기독교는 성장이 멈췄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서구를 모방하며 추종해 왔는데 이제는 선진국가의 수준에 들어 섰기 때문에 더 이상 사회 전체적으로 서구를 그다지 추종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제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기독교인들은 서구를 모방하는 데에 앞장섰는데 서구도 지금 문제가 많아서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인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보수화되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비전이나 추진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기독교는 현재 가장 큰 세력, 즉 현재의 기득권이긴 하지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그룹이 더 이상 아닙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단지 불교 안에서만 비전을 제시하는 그룹이 아니라 전체 종교 안에서도, 한국 사회 안에서도 미래지향적인 그룹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불교라든지 다른 종교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 안에서 가장 진보적인 그룹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규모는 작지만 미래사회를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기독교나 다른 데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리드하기까지는 앞으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INEB 스님들에게 조계사를 안내한 후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대중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최영미, 박승우, 정란희, SNS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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