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아침 7시부터 ‘북한의 현실과 이해 전문가 모임’에 참석하여 현 북한 상황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시부터는 한국 국제보건의료재단 초청으로 ‘북한의 보건 의료현황과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강의를 한 후,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그 후, 평화재단에 돌아와 기획위원들과 기획회의를 마친 후 서둘러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행복한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5월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 날씨가 조금 더웠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순천 문화건강센터 밖에는 시민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안에서는 50여 명의 봉사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강연 들으러 일찍부터 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1층과 2층 객석을 꽉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는 순천법당을 주관으로 하여 인근 지역인 여수, 광양에서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스님은 “계절만 봄이 아니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함께 왔다며 마음이 얼어있는 사람이 있으면 오늘 대화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일곱 명이 질문했습니다. 남편이 혼자서 너무 잘 지내서 걱정이라는 분, 결혼 7년차 주부인데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니 스님께 응원의 말씀을 부탁하는 분, 아내를 사랑하지만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 괴롭다는 분,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데 계속 주어야 될지 고민이라는 질문, 20살 쌍둥이 아들의 문제로 남편과 다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 현재 한반도의 정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묻는 분, 불교가 여성을 해방한 학술적 근거가 있는지 자세히 알고 싶다는 분 등, 개인적인 고민에서 학술적인 질문까지 다양한 궁금증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내와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민을 말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결혼 14년차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려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젊었을 때 놀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도 못해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남자들과 어울리는 1박2일 여행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로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최근 1년 동안 아내와의 다툼으로 많은 심리적 고통이 있었으나 스님과의 즉문즉설, 심리치료, 독서, 아내와의 합의를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아내와의 사이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마음이 지금도 좀 남아 있습니다.

믿음을 먼저 주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믿음을 주기 위한 말과 행동이 먼저인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제가 보기에 부족해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나 마음까지 받아주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믿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궁금합니다.”

“뭘 진정한 사랑까지 할려고 그래요.(모두 웃음) 사랑 같은 거 생각하지 마세요.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 봤어요? 그 책 제목이 원래 ‘사랑 좋아하시네’예요. ‘무슨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순전히 이기심으로 서로 만나서 사는 거지’ 이런 뜻입니다. 이런 제목을 줬더니 출판사에서 이건 좀 아니라고 해서 ‘스님의 주례사’라고 붙였는데, 핵심은 ‘사랑 좋아하시네’입니다.

질문자도 사랑 타령 좀 그만 하세요. 계산을 딱 해봐야 해요. 지금 여러분들이 사랑이 어쩌니 해도 사실은 다 이기심으로 사는 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상대를 만났을 때 인물이 어떤지, 대학은 어디 나왔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집안은 어떤지 따지는 것은 같이 살면서 득 좀 보겠다는 것 아니에요? 손해 볼 걸 각오하면 그런 걸 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예를 들어 남편이 나보다 못생겼으면 내가 남편한테 이익을 주잖아요. 둘이서 손잡고 모임에 나가면 남편 친구들이 남편한테 ‘야, 너 결혼 잘 했다’라고 하겠죠. 그게 남편한테 득을 주는 셈이잖아요. 나는 부자인데 가난한 남편하고 결혼했다면 남편 친구들과 친척들은 다 남편한테 ‘야, 너 장가 잘 갔다!’ 이럴 거예요. 남편은 성질이 더러운데 아내는 포용력이 있으면, 남편 친구들이 ‘야, 너 색시 잘 만났다’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여러분들이 시집 잘 갔다 소리를 듣는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남편 친구가 볼 땐 ‘멀쩡한 녀석이 어딜 가서 저런 여자를 만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에요.(모두 웃음)

친구를 사귈 때는 의리가 있나 없나 한 가지만 보고 사귀고, 사업을 할 때는 신용이 있나 없나 이거 한 가지만 보고 사귑니다. 그런데 결혼을 할 때는 열 가지를 더 봐야 해요.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거예요. 좀 속된 말로 하면 하나 잡아서 평생 벗겨먹으려고 하는 심보로 골라요. 그렇게 고르기 때문에 결혼을 해놓고도 별로 득 보는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결혼 잘못했나? 괜히 했나?’ 이런 생각이 들고, 손해라는 게 확실해지면 ‘굳이 같이 살 게 있나?’ 이렇게 됩니다. 이게 무슨 사랑이에요? 그래서 장사라고 하는 거예요.

장사라고 해서 결혼을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자본주의입니다. 장사로 결혼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꼭 사랑으로 결혼해야 좋고 장사로 결혼하면 나쁘다는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장사를 하면서 자꾸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장사면 장사, 사랑이면 사랑, 입장을 좀 통일하세요. 장사를 해놓고 자꾸 사랑 타령을 하니까 괴로움이 생긴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아내와 안 사는 게 좋겠느냐?’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봐요. ‘좀 늦게 들어오고, 술 좀 먹고, 다른 남자하고 좀 논다고 같이 안 사는 게 낫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게 낫느냐?’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은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한테 물어보세요. 예를 들어 내가 장사를 해서 이 사람과 거래를 한다고 합시다. 내가 100원을 벌고 저 사람은 500원을 벌어요. 그러면 심통이 좀 나잖아요. 그래서 ‘에이, 너랑 거래 안 한다’ 하고 끊어버리면 저 사람은 손해를 보겠죠. 그런데 상대가 이익 보던 걸 손실시킨 게 기분 좋을지는 몰라도 나한테도 손실이 생기잖아요. 이건 잘 하는 게 아니라 바보라는 거예요.

막상 딱 거래를 끊으면 내가 손해를 봅니다. 서로 같이 벌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내가 조금 밖에 못 벌더라도 거래를 하는 게 나아요. 그런데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내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이익 보는 건 못 봐주겠다’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혼을 하고 나면 나중에 후회가 됩니다. 다음에 찾아보면 그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남편, 내가 원하는 아내만큼은 안 되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헤어지고 새로 찾으려면 그만한 사람 찾기도 쉽지가 않아요. 거래를 끊기 보다는 조금 아쉽지만 장사를 계속 해야 해요. 이렇게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어떻다느니, 사랑을 먼저 줘야 하니, 안 줘야 하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마세요.그렇게 하면 문제가 오히려 해결이 안 돼요. 부부는 사랑으로 만나고 어쩌고 이런 얘기해서는 인생이 해결 안 돼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 내가 너 만날 때 득 좀 보려고 만났다. 너도 나 만날 때 득 좀 보려고 만났을 거다. 그러면 우리 계산 한 번 해보자. 나부터 계산해보니 내가 좀 손해나는 것 같다. 그러니 거래를 끊자. 그런데 끊어놓고 보니까 손해가 더 난다. 그러니 그 정도는 감수하고 살아야 겠다.’

이익을 따지면서 접근한다 해서 나쁜 게 아니에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이익을 따지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 두 가지를 자꾸 혼용하지 말라는 거예요. ‘혼자 사는 게 좋으냐? 둘이 사는 게 좋으냐?’ 이런 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때는 혼자 사는 삶 중심으로 사물을 보고, 어떤 때는 둘이 사는 삶 중심으로 사물을 본다는 거예요. 혼자 사는 쪽으로 선택을 했으면 혼자 사는 데 따르는 이익이 있고 손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손실을 감수해야 해요. 그래야 혼자 살 자격이 있는 거예요.

결혼을 하려면 둘이 살 때 오는 손실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어야 둘이 살 자격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결혼 안 하고 혼자일 때는 오늘은 이 여자하고 커피 마시고 내일은 저 여자하고 커피 마셔도 문제가 안 되는데, 내가 이 여자하고 결혼을 해놓고서 오늘 이 여자하고 커피 마시고 내일 저 여자하고 커피 마시면 문제가 됩니다. 결혼을 하면 커피 마시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마시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두고 ‘내가 커피도 내 마음대로 못 마시나?’ 이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결혼을 했다고 다른 여자와 커피 마시면 안 된다, 손잡으면 안 된다’ 이런 게 법조항에는 없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면 이런 거는 서로 예의를 지키자고 관습적으로 약속이 돼 있단 말이에요.

결혼을 했을 때의 관습적인 인식을 안 지키려면 애초에 결혼을 안 해야 해요. 법률적으로 어기는 것은 처벌 대상, 즉 범죄가 됩니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관습적인 것이 도덕인데, 이 도덕도 지켜야 합니다. 도덕을 안 지키면 처벌은 안 받지만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아내가 내가 원하는 만큼 나만 쳐다봐주고,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일찍 들어오고, 술도 안 마시면 좋겠죠. 그러면 100점이에요. 그런데 술도 먹고, 늦게 들어오고, 다른 남자도 만나니까 50점이에요.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니까 그냥 확 치워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있던 50점도 없어져버려요. 애들도 누가 봐야 하고, 밥도 누가 해야 하고, 저녁에 잠자리도 해야 하는데 상대가 없어지니까요. 그걸 채워줄 상대를 다시 찾아서 관계를 맺으려면 질문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피곤해집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먼저 한두 번 얘기해보세요. ‘여보, 같이 살면서 이러이러한 거는 좀 서로 맞춰주면 어떻겠냐’. 이렇게 얘기해봤을 때 상대가 ‘어, 그래? 그렇게 할게’ 라고 하면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거나,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못할 수도 있어요.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습관이 있어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얘기할 때는 ‘아, 술 안 먹을게’ 하지만 술만 보면 또 넘어가는 거예요. 그럴 때는 내가 감수해야 합니다. 100점이면 좋지만 50점이라도 감수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럴 때 제가 ‘저하고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문을 주는 거예요. 아침에 눈 떠봤을 때 도망 안 간 것만 해도 감사하고, 새벽에 눈 떠보니까 집에 들어와 있는 것만 해도 고마워요. 밤에 안 들어오는 것보다는 들어오는 게 고맙잖아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해요. 10시까지 들어오라 했는데 10시까지 안 들어오면 상대가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안 들어오는 것에 기준을 잡으면 새벽 2시, 3시라도 들어와 주기만 하면 고마워요. 상대가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입니다. 기준을 저녁 10시에 둘 건지, 이튿날 아침 6시에 둘 건지의 문제예요. 배우자가 하루 자고 들어오는 버릇이 있으면 이틀까진 안 자고 들어와서 감사한 거예요.(모두 웃음)

같이 살려면 이렇게 보는 게 낫다는 거예요. 제 말은 꼭 같이 살라는 뜻이 아니에요. 같이 살려면 관점을 이렇게 볼 때 나한테 좋다는 거예요. 살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싸우면 우선 내가 힘들어요. 두 번째는 상대편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되면 나도 초라해지는 거예요. 나쁘면 같이 안 살아야 할 텐데 나쁜 인간 밑에 붙어서 사는 셈이니까 내가 얼마나 초라해져요?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나쁜 사람의 자녀가 되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몰라요.

그러니 같이 안 살거나, 같이 살려면 좋게 생각하세요. ‘우리 아내가 술이 좀 과한 건 있지만 딴 건 좋아. 10시까지는 못 들어오지만 그래도 하루는 안 넘겨’ 이렇게요. 하루를 넘기면 ‘그래도 이튿날 저녁엔 들어와’ 이렇게 생각하세요. 계산을 하루만 빼버리면 돼요. 같이 살려면 이렇게 생각할 때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는 되세요?”

“예.”

“이해만 될 뿐이지요.(모두 웃음) 정작 꼬라지 보면 안 돼요. 그래도 우선 이해라도 해야 해요. 이렇게 사물을 보면 그게 곧 사랑이에요. 아내가 문제가 있고 남편이 문제가 있더라도, 남이 볼 때는 ‘아이고, 보통 사람 같으면 저런 여자하고 못 살 텐데 같이 사는 걸 보니 저 사람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나봐! 저 사람은 참 자비심 있네’ 이렇게 평가가 되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진짜 자기의 이익에 밝아야 한다는 거예요. 성질내고 싸우는 건 이기심 같지만 결국 자기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자기를 자기가 해치지 말라는 거예요. 상대는 자기가 좋아서 술 먹는데 그걸 보고 내가 괴로워하는 거예요. 새가 우는 걸 보고 내가 괴로워하고, 달이 뜨는 걸 보고 내가 괴로워하고, 남이 술 먹는 걸 보고 내가 괴로워하면 얼마나 바보예요? 술 먹는 게 그렇게 부러우면 나도 먹으면 되죠. 늦게 들어오는 게 그리 좋아 보이면 나는 하루 더 늦게 들어와 버리면 되죠. 그게 뭐 문제라고 그래요? (모두 웃음)

우리는 이렇게 자기를 해칠 때가 많습니다. 입으로는 남을 핑계 댑니다. 그러면서 결국 자기가 자기를 해쳐요. 이걸 어리석다고 해요. 그러니 그런 바보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조금 지혜롭게 사세요. 지혜롭게 살려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해요. 자기를 진정으로 아껴야 해요. 자기가 소중한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남편 핑계 대고, 아내 핑계 대고, 아이 핑계 대고, 또 다른 누구 핑계 대면서 자기를 괴롭히고 삽니다. ‘너 때문에 어쩌고’ 이러면서요. 그건 결국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예요. 이걸 부처님은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했어요.”

스님은 질문자들의 질문을 모두 답변해 주느라 2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질문자는 준비해온 노트에 꼼꼼히 적었고, 청중들은 중간중간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중들을 향해 “재미있는 것은 지금이 좋고 유익한 것은 나중에도 좋다. 어떤 핑계를 대고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라며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한 분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을 바꿀 수 없으면 받아들이고, 괴로움에 발목 잡혀서 어리석게 살 필요는 없구나 생각했어요. 아내와 의견 조율을 통해 적절한 합의를 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질문자는 활짝 웃으며 스님께 책 사인을 받는다고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 외 참석한 청중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렸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의 필요성을 쉽고도 깊게 알게 되었다.”, “작은 부분에서 행복을 찾아야겠다.”, “부처님 시대에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부처님이 이렇게 노력하셨다는 걸 새로이 알게 되었다”, “힘들 때마다 스님 강연에서 도움을 받아 실제로 들으러 왔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좋았다.” 등등 사인을 기다리는 청중들의 얼굴은 환한 봄기운이 도는 듯 밝았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주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순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봉사자 모두가 스님과 함께하는 순간을 행복해 했습니다.

다양한 세대의 많은 분들이 스님의 말씀에 함께 웃고 고개 끄덕이며 공감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한반도의 봄을 강연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인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럽게 조금씩 밝은 국면으로 한반도 정세가 진행되어 나가길 기원해 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미영, 김태용,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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